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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창한 봄, '울산 중구문화의전당' 콘서트 어떠세요?

다감이 윤경희

다감이 윤경희

아파트 담장을 따라 줄장미가 한창이다. 축하와 감사의 달, 짙어가는 녹음 속에서 원색의 장미가 오월을 축제의 분위기로 이끈다. 가녀린 줄기를 담장에 기댄 적록의 조화는 절제되지 않은 열정의 되바라짐이다. 그 원형적인 색감이 뿜어내는 기운생동은 전전긍긍하지 말고 마음껏 생명의 기운을 뿜어내라는 도발적인 부추김 같다.

중구문화의전당_외관 다양한 기획프로그램들을 개최하고 있는 중구문화의전당 – 울산 중구문화의전당 제공

오월에는 뼈만 남아 앙상한 감성의 가지에 물을 올리고 싶다. 밑바닥 어딘가에 눌려 있을 생명의 기운을 끌어올리는 데는 음악만한 것이 없다. 중구문화의 전당에 일상을 어루만져 주는 콘서트가 열린다고 소식을 듣고 나섰다.

5월 ‘에센셜 클래식’ 공연일은 마침 어버이날이었다. 그래서인지 관람석에는 가족관람객이 눈에 띄게 많았다. 긴 의자가 나란히 두 줄, 계단식으로 배치하여 모두 열 줄이다. 몸을 좁혀 다섯 명씩 앉았다. 무대와 객석의 거리가 짧아 연주자와 관객의 관계도 한층 더 가까워진 듯하다. 마치 가족이 된 느낌이었다.

어울마루에서는 한 달에 세 번, 정기적으로 컨셉을 달리하는 연주회가 열린다. 조희창의 강좌가 있는 콘서트 ‘에센셜 클래식’, 직장인을 위한 ‘수아레 콘서트’, 목요일 아침의 화려한 외출 ‘마티네 콘서트’ 등, 부재를 달고 있는 특색 있는 음악회가 그것이다.

‘에센셜 클래식’은 해설과 토크, 연주가 어우러진 음악회이다. 오월의 주제는 <고전주의 음악의 금자탑> 소나타였다. 고전주의 음악은 17세기 철학의 흐름인 계몽주의와 맞닿아 있다. 바로크 시대에는 음악이 교회와 귀족의 전유물이었다면, 고전주의 시대에는 산업혁명으로 부를 이룬 중산층이 음악의 향유층으로 편입 되었다. 이 때 나타난 것이 ‘절제’와 ‘균형’과 ‘질서’의 미를 추구하는 소나타 형식이라고 한다.

조희창의 강좌가 있는 콘서트 에센셜클래식 조희창의 강좌가 있는 콘서트 '에센셜 클래식' 전경

소나타는 고전주의 시대에 정립한 기악곡의 형식을 말하는 것으로 제시부, 전개부, 재현부의 3부 구성을 가지며 앞뒤로 도입부와 종결부가 붙기도 한다. 제시부에서 성격이 뚜렷하게 구별되는 두 개의 주제를 대비시키고 전개부에서는 둘의 갈등을 증폭시키며, 재현부에서는 마침내 둘을 화해시켜 어우러지게 하는 소나타 형식은 현실의 갈등과 모순을 합리적인 사고와 이념을 통해 해결하고자 했던 인간의 노력과 닮은꼴이다.

여기까지가 조희창 평론가가 들려준 주제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에게 비교적 익숙한 음악적 용어를 클래식의 역사와 버무려 들려주니 쉽게 이해되고 재미도 있었다. 곧이어 바이올린, 첼로, 피아노 연주자들이 나와 먼저 제시부에 제기된 두 개의 주제를 대비시켜 들려주었다. 그다음 그 주제가 화려한 변형을 거쳐 화해와 결말에 이르기까지 악장 전체를 연주하니 듣는 사람도 갈등을 거쳐 변화와 평화로운 결말에 이르기까지 마치 한 권의 소설을 읽는 듯 명료하게 와 닿는다.

이때 선택한 음악은 천의무봉(천사의 옷은 기운 자욱이 없다)이라 극찬을 받는 W.A.모짜르트의 바이올린 소나타 K.301번 1악장과 R.슈트라우스의 바이올린 소나타 작품18번, 1악장이었다. W.A.모짜르트의 단순, 명료, 청아하고 우아한 로코코 형식 같은 발랄함에 비해 150년 뒤에 나타난 후기낭만파 R.스트라우스의 소나타는 꾸불꾸불하고 장식적이며 복잡한 느낌이 들었다. 두 작품의 대비를 통해 작곡가의 성향과 시대에 따른 음악적 변화를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리하르트 바그너에 의해 “교향곡을 쓸 권리는 베토벤에 의하여 소멸되었다. …… 그 이상 음악적 진보는 바랄 수 없다.”는 평가를 받은 악성 베토벤은 온갖 콤플렉스에 시달린 불운한 인물이었다고 한다. 특히 나폴레옹에 의해 비엔나가 침략을 당한 1801년에서 1809년까지는 정치적, 경제적, 혼란에 건강까지 위협을 당한 베토벤의 인생 중 최악의 시기였다고 한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교향곡 3번 ‘영웅’, ‘열정’, 5번 ‘운명’, ‘전원’, ‘황제’에 이르기까지 베토벤의 ‘걸작의 숲’은 이 시기의 작품이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정금은 불의 연단을 거친 뒤에 나온다고 했던가. 그의 불운한 개인사가 오늘날까지 우리를 감동으로 이끄는 창작의 원동력이 되었다니 새삼 거저 얻어지는 것은 하나도 없고 반드시 얻는 것에 크기에 따른 희생이 뒤따르는 것 같다.

콘서트 전경 중구문화의전당 어울마당에서 주기적으로 개최되는 콘서트 장면

음악 용어의 이해와 음악의 역사를 더듬어 가다보면 어느새 ‘아는 만큼 들린다.’는 경지에 접어들게 된다. 음악을 읽어주는 사람 조희창 씨의 토크는 부드럽고 자연스러우며 재미있었다. 그의 강의는 ‘음악을 듣는다.’에서 시작해 ‘음악을 본다.’와 ‘음악을 이해한다.’에 이르게 해준다.

주제보다 엉뚱하게 들어선 곁길이 주는 재미와 감동에 사로잡힐 때가 있다. 주제와 관련이 없지만 어버이날을 기념하여 드보르 작의 ‘일곱 개의 집시 노래’ 중 네 번째 노래인 어머니에 관한 음악 영상을 보여줄 때 그런 느낌이었다. 몸피만큼이나 풍부한 성량을 지닌 체코 성악가 소프라노 만카 이슬라이노바가 부른 ‘어머니가 가르쳐준 노래’는 관객들을 충분히 어머니에 대한 향수로 이끌었다고 본다.

늙으신 어머니가 내게 그 노래를 가르쳐주실 때

어머니 눈에는 눈물이 곱게 맺혔네.

이제 내가 내 어린 딸에게 그 노래를 들려주노라니

내 그을린 두 뺨에도 한없이 눈물이 흘러내리네.

‘에센셜 클래식’을 관람하고 8일 뒤, 친구와 함께 ‘수아레 콘서트’를 갔다. 수아레 콘서트는 이브닝 콘서트의 다른 말이다. ‘에센셜 클래식’에 비해 음악을 즐기기 위한 이론적 지식이 필요치 않다. 직장과 일터에서 업무와 관계에 시달린 직장인들이 억눌러두었던 감성의 끈을 마음껏 풀어놓는 시간이었다. 재즈피아니스트 남메아리와 더블베이스와 일렉트릭베이스의 베이시스트 최은창, 재즈드러머 서수진의 엮어내는 리듬과 운율의 세계는 관객들을 아무 거리낌 없이 재즈의 세계로 빠져들게 하는 힘이 있었다.

칠부 청바지에 흰색 남방을 걸쳐 입고, 손가락으로 아무렇게나 빗어 넘긴 곱슬머리를 뒤로 질끈 묶은 재즈피아니스트 남메아리는 연주곡 절반을 자신의 자작곡으로 채웠다. 피아노 건반 88개 위를 작은 열 손가락이 종횡무진 리듬을 따라 움직일 때는 그 현란함이 경이로움을 금치 못했다.
피아노와 드러머, 더블베이스의 각기 다른 리듬은 때로는 부딪치고 주고받는 그 기교에 몰입하다가 어느새 운율에 몸과 마음을 실어 연주자들과 같은 리듬으로 몸을 움직이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다. 비로소 재즈의 세계로 입문했다. 커피 두 잔 값으로 몸과 영혼의 때를 깨끗이 씻어낸 듯한 산뜻함을 안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마티네 콘서트’를 예약했다. 오늘 밤은 어쩐지 하늘을 나는 꿈을 꿀 것만 같다.

마티네콘서트 마티네 콘서트 중 바이올리니스트 협연 장면
※ 공연프로그램 정보안내

○ 장소(공통) : 중구문화의 전당 지하1층 어울마루
○ 입장료(공통) : 만 원
○ 주요 프로그램
- 조희창의 강좌가 있는 콘서트 ‘에센셜 클래식’ : 매월 둘째 주 화요일 오전11시
- 직장인을 위한 ‘수아레 콘서트’ : 매월 셋째 주 수요일 오후7시30분
- 목요일 아침의 화려한 외출 ‘마티네 콘서트’ : 매월 마지막 주 목요일 오전11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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