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인물

공간에 수수께끼와 퍼즐을 만들어요.

- 울산의 젊은 예술가 김이화 작가를 만나다 -

다감이 김금주

다감이 김금주

비온 뒤, 카스텔라처럼 폭신해진 솔마루길을 걷다가 문득 헨젤과 그레텔이 헤매던 숲길과 닮은 것 같아 마시던 음료 병을 내려놓고 사진을 찍었다. 제목은 ‘헨젤과 그레텔’. 동화라는 매개체를 사용해 공간예술을 하는 김이화 작가를 만나고 난 뒤 새로 생긴 버릇이다.

  • 헨젤과 그레텔. - 다감이 作헨젤과 그레텔. - 다감이 作
  • '5가지 동화의 숨겨진 이야기' 전시 모습(2013) - 김이화 작가제공'5가지 동화의 숨겨진 이야기' 전시 모습(2013) - 김이화 작가제공

울산에 터를 잡고 활동하는 김이화 작가는 전시작품에 따라 공간예술가로 불리기도 하고 장소특정예술가로 불리기도 한다. 쉽게 '설치미술가'라고 하는데 쉽지 않다. 어렵다. 그러나 그녀가 하는 전시를 보고 나면 아~ 하고 감이 온다. 작가를 만나기 전 그녀가 참여한 ‘고독(solitude)’전에서 ‘두개의 식탁’이라는 작품을 먼저 만나 보았다. 지난 6월 23일부터 28일까지 중구 북정동 빈집에서 열린 ‘고독’전은 쓸쓸한 재개발 주택에 4명의 작가가 자신만의 스타일로 고독을 표현하는 전시였다. '전시공간'으로 가기 위해 들어선 골목에서도, 그리고 저만치 떨어져 있는 빈 집에서도 쓸쓸함이 느껴졌다. 폐가에서 오는 쾌쾌한 냄새와 동네 개 짖는 소리까지 더해 묘한 느낌이었다. 다감이는 그 빈집에서 ‘고독’보다는 어색함과 스산함을 느꼈다.

  • 재개발 주택에서 열린 ‘고독’전재개발 주택에서 열린 ‘고독’전
  • <두 개의 식탁><두 개의 식탁>
  • 작가연합 ‘고독’전작가연합 ‘고독’전

김이화 작가는 묘한 느낌을 주는 그 빈 집에서 자개장이 있는 예스런 방을 골라 의자와 방석을 놓고 동서양의 식문화를 상징하는 식탁을 설치했다. 영국에서 유학할 당시의 외로움과 이를 극복한 과정을 표현했다고 한다. ‘고독’전은 장소도 특이하고 그 형식 또한 낯설어서 어려웠지만 새로운 것을 접할 때의 호기심에 가슴이 설레었다.
김이화 작가에 대한 여러 기사와 전시에서 받은 느낌으로 질문 16개를 만들어 약속장소 '3층집'으로 향했다.
그녀는 성남동에서 박승한 대표와 함께 공유문화공간 '3층집'에서 '뉴 미들 클래스(new middle class)'라는 커뮤니티를 공동으로 운영하면서 작업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고 한다.인터뷰에 앞서 관람했던 <고독>전의 작품은 선입견 없이 보았지만 작가에 대해서는 독특한 예술세계와 영국유학의 이력 등으로 다부지고 ‘센 언니’를 상상했다.

선입견이란 것이 무너지는데 매력이 있듯이,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 느낀 인상은 어떤 배우를 닮은 청순한 매력이었다.
눈을 반짝이며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작가와 수다를 부리고 나니, 그녀의 인상적인 어록이 한 웅큼 기억에 남아있다.

김이화 작가 <김이화 작가의 사진>
※ 김이화 작가 제공
김이화 작가
“저는 운이 좋은 거 같아요."
울산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영국으로 유학을 갔어요. 고2때 우연히 패션쇼의 무대를 보고 반해서 무대미술을 배울 수 있는 곳을 알아보다가 해외에 전문학교가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 때부터 유학 준비를 해서, 런던 국립예술대학교에 들어갔죠. 영어는 8개월 정도 지나니까 소통이 되더라고요.

졸업하고 영국에서 무대설치 쪽으로 2년 정도 일을 하다가 울산으로 왔어요. 그리곤 2013년에 울산문화예술회관에서 ‘5가지 동화의 숨겨진 이야기’를 주제로 개인 전시회를 시작했고, 그 일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네요. 그래서 저 스스로 운이 좋은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울산은 문화의 불모지?"

울산은 문화의 불모지가 아니에요. 다른 지역에 비해 젊은 예술가가 적은 건 안타깝지만 그들을 돌아오게 해야죠. 저는 2013년에 울산으로 와서 터를 잡았지만 그 동안 울산뿐만 아니라 서울,이나 독일, 호주에서도 전시를 했어요.
서울은 미술시장이 포화상태인데 비해 울산이 오히려 경력을 쌓기에 좋았고, 그걸 발판으로 이름을 알리니 서울이나 외국에서도 초청을 해주더라고요. 제 경우엔 영어를 하는 것도 한 몫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후배들이 물으면 이제는 예술가들도 외국어를 잘 하는 것이 좋겠다고 이야기해요. 울산을 기반으로 하되 고인 물은 되면 안 되니까요. 울산이 블루오션일 수도 있어요.

"예술은 친절해야"

‘고독’ 전을 보고 ‘너무 어렵다’고 하셨잖아요. 그런 솔직한 후기 좋아해요. 특히 이번에는 재개발 주택이어서 그런지 동네 할머니들도 오셨거든요. “와 우리 집 자개농을 갖다 놨노” 하는 분도 있고, 도대체 뭐하는 데냐고 묻는 분도 있고, 파는 물건은 없냐고도 하시더라고요. 그런 반응도 고맙고 재미있어요.
저는 다 답해 드리고 감상평에 귀 기울여요. 기획자가 감상자가 될 수도 있는 거잖아요. 현대예술은 작가가 자기를 벗어나 대중에게 다가가야하고, 대중이 예술의 주체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 작품은 시詩와 같았으면 해요."

詩를 읽는 것처럼 독자들과 소통했으면 좋겠어요. 제가 어떤 주제를 가지고 전시를 했든 보는 사람에 따라 해석이 다 달랐으면 해요. 그래서 제 전시는 관람할 때 사전지식도 필요 없고 어떤 형식도 필요 없어요. 공간이라는 것이 갇힌 것 같지만 사실은 사람들이 움직여야 하고 시각, 청각, 후각등 모든 감각을 동원하는 전시기 때문에 굉장한 시너지효과를 볼 수 있죠.

작가의 작업실 모습 작가의 작업실 모습
"제가 하고 싶은 일은 한 가지예요."

밥벌이가 되냐고 많이들 물어보세요. 심지어 부모님도요. 무대설치 쪽으로 일하거나 회사에 들어가면 돈은 벌겠지만 아직은 오롯이 예술에만 전념하고 싶어요. 다행이 지금까지는 전시회를 마치고 나면 작업비는 충당할 수 있었어요. 문화를 공유하는 모임들이 잘 조직되어 있고, 공모 등을 통해서 지원을 받기도 하구요. 투자를 받아 전시를 하기도 해요.
그런데 많은 예술인들이 대부분 투잡을 하고 있어요. 저도 통번역도 하고 학원에서 영어를 가르치기도 하죠. 힘들지만 결핍에서 오는 작업이 의미가 크더라고요. 경제적 여유가 있다면 더 넓은 공간에 더 많은 퍼즐로 제 생각을 펼쳐 보일 수 있겠지만 하는 일은 한 가지잖아요. 공간을 활용한 장소특정예술에서 하고 싶은 일이 무궁무진하거든요. 사회적 문제도 다뤄보고 싶고요. 그래서 '돈은 단지 거들뿐?'이라는 생각을 할 때도 있습니다.

지난 6월 참여했던 <고독>전 오프닝에서 작가들과 함께 지난 6월 참여했던 <고독>전 오프닝에서 작가들과 함께

작가와의 인터뷰를 마치고

이번 인터뷰를 통해 정말 많은 것들을 느끼고, 또 새롭게 고민해볼 수 있게 되었다.

김이화 작가는 스스로를 '운이 좋다'고 했지만 미술을 전공하지 않은 고등학생이 하고 싶은 일을 위해 모든 과정을 스스로 개척했다. 또 그렇게 설계한 유학과정에서 졸업을 위해 뮤지컬 무대 같은 현장에서 인턴으로 참여하며 돈을 벌고 경력도 쌓았다고 한다. 그 뒤 울산으로 돌아왔을 때에도 영국의 경력을 인정받아 신예작가임에도 전시장을 빌릴 수 있었을 것이다.

어제까지의 부단한 노력이 없었다면 오늘의 행운도 의미를 발휘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같은 맥락에서 작가가 울산으로 다시 돌아온 이후에도 '자신만의 무기'를 갖추고 있다면, 지역에서도 얼마든지 색다른 활동을 할 수 있고, 고인 물이 되지 않고 열린 예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순수한 시도와 함께 이를 예술로 만들기 위한 노력, 그리고 숱하게 갈고 닦은 준비와, 이를 촉발할 수 있는 기회가 어우러 질 때 모든 것이 승화되는 것처럼 말이다. 전문화된 경력을 가진 예술가의 다양한 시도는 끝내 예술로 나아갈 수 있겠지만, 등산길의 순간적인 낭만만으로 그 즉시 백남준 화백처럼 될 수는 없는 것이다.

한편으로, 보통 시민들이 '작가'나 '예술가'는 어려운 말만 하고 자기만의 세계가 분명해서 다가가기 힘들다고 생각한다는 현실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았다. 다감이가 ‘센 언니’의 선입견을 가졌듯이 말이다. 김이화 작가처럼 모든 예술가가 시민들에 보다 친절해 줄 수 있다면 전시장의 문턱은 한층 낮아지리라.

김이화 작가에게 마지막 질문으로 지원이 많다면 하고 싶은 일과 지원이 없어도 꼭 하고 싶은 일을 물었을 때, 그는 "그래도 하고 싶은 일은 하나"라고 답했다. 순수 무대 전시는 작가가 꾸민 무대를 전시장에 선보이는 장르다. 전시 공간을 마련하는 것도 쉽지 않다. 그럼에도 공간을 기획하고 현장에서 직접 장치를 설치하며 발로 뛰는 일이 여전히 매력이 있다고 한다.

김 작가는 앞으로도 다양한 형식의 전시를 많이 해서 대중과 더 가까워지기를 원하고 있었다. 또, 울산을 기반으로 하는 후배들이 많이 나오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녀의 활발한 활동이 울산이 새로운 문화도시로 나아가는데 훌륭한 구름판이 될 수 있길 바란다. 지금껏 그래왔듯이 인생은 항상 준비하는 사람에게 새로운 길을 보여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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