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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거룩한 형제> 이야기를 아시나요?

다감이 윤경희

다감이 윤경희

혹시 ‘용감한 사형제’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나요? 울주군 두동 구미리에 있는 충효정의 주인공들이랍니다. 이들은 故 이재양씨와 故류분기씨의 장남 민건, 차남 태건, 삼남 영건과 막내 승건 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세 분은 6·25전쟁에서, 승건님은 베트남전에서 전사하셨다고 합니다. 아들 셋의 전사통지서를 받은 아버지는 그날로 병을 얻어 몇 년 뒤 세상을 떠났으며, 어머니도 베트남전에 지원한 막내아들의 전사 소식을 듣고 몸져누웠다가 6년 뒤 유명을 달리했다는군요.

  • 충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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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효정에서는 국가를 위해 산화한 4형제를 기리는 추모제를 매해 6월에 열고 있다고 합니다. - 추모제 사진 울산시 제공

제가 충효정을 찾은 날은 6·25참전 68주기가 되는 날이었어요. 내비게이션에도 나와 있지 않은 길을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찾아갔지요. 왜냐하면, 뮤지컬 『거룩한 형제』의 실제인물들을 만나기 위해서였기 때문입니다. 충효정 앞쪽과 양 옆에 도열한 국기게양대에 매달린 반기(反旗)는 내리는 비를 맞아 아래로 축 늘어져 있더군요. 두 기의 무덤과 그 앞에 나란히 서 있는 네 개의 비석을 바라보니, 꽃다운 나이에 유명을 달리한 네 분의 한(恨)보다는 생떼 같은 자식을 잃은 부모의 고통이 와 닿아 더 가슴이 아팠습니다.

‘용감한 사형제’를 모티브로 삼은 『거룩한 형제』는 우리 시의 역사·문화적 배경을 바탕으로 한 창작뮤지컬입니다. 울산문화재단의 ‘2018년도 지역문화예술지원사업’ 지원에 선정되어 제작하는 뮤지컬인데요. 국악동인 ‘휴’가 주최·주관하여 다음달 9월 21일 금요일 오후 8시, 울산문화예술회관(소공연장)에서 공연을 올릴 예정이라고 하네요. 저는 작품이 무대에 올라가서 많은 매체들에 주목을 받기에 앞서 『거룩한 형제』의 중요 스텝들을 만나 사전인터뷰를 해봤습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잖아요.

<거룩한 형제>의 모티브인 네 형제의 유가족분과 제작진

다감이 윤경희(윤) : 울산에 계시는 분이라면 극단 ‘휴’가 어떤 단체인지 다 알고 있을텐데요. 혹시 이번에 처음 접하는 분들을 위해 간단히 단체 소개를 부탁드려요.

고경아(국악동인 ‘휴’ 대표): 안녕하세요? 극단 ‘휴’는 울산에서 활동하는 국악동인으로 2012년에 창단했어요. 전통악기의 매력을 극대화시키면서 현대적 감각을 접목하는 음악을 추구하고요. 창단 이래 심청전을 현대적 감각으로 새롭게 편곡한 창작가무극 ‘심청-꽃의 길’, 처용, 고래, 쇠불이 등 울산 콘텐츠를 중심으로 한 ‘토끼이야기’, ‘처용왕자’ ‘꿈꾸는 고래야’, 어린이 뮤지컬 ‘울산바위’등 지금까지 많은 작품을 발표하면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 가고 있습니다.

: 울산의 역사·문화적 배경이 될 만한 하고많은 소재 중에 이 모티브를 선정한 이유가 궁금해요.

박성태 프로듀서: 어떤 소재가 울산을 대표할만한가 선정 과정에서 많은 고민이 있었어요. 그런데 사형제 이야기를 듣는 순간, 울산을 대표할만한 문화컨텐츠로서 충분한 가치가 있다는 느낌이 왔어요. 이야기의 실제인물들이 순수한 울산토박이면서 평범한 사람이라는 점과 다른 소재에 비해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에 마음이 끌렸죠.

그런데다 사형제가 전쟁에서 죽은 일은 우리나라에서 이 분들밖에 없어요. 그런 면에서 이 가족은 우리나라 근대사의 비극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죠. 전쟁 전에는 만석꾼 부자로 무척 다복한 가정이었는데 전쟁이 이 가족의 과거와 현재, 미래까지 몽땅 빼앗아갔죠. 세 차례 정도 사남인 이부건(81세) 씨를 만나 인터뷰하는 과정에서, 이 비극적인 내용을 작품으로 승화시켜 개인적으로는 가족의 한을 풀어주고 또한 이분들의 숭고한 희생을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야겠다는 사명감을 느꼈어요.

故 이재양님과 故류분기씨의 묘소 앞에 마련된 네 분 형제의 충효비

이부건 씨는 지금 방광암에 파킨슨씨병 등을 앓고 있는데, 병든 몸을 이끌고 자신이 아니면 누가 부모님과 형제들의 한을 풀어주겠느냐면서 백방으로 뛰어다녀요. 이제는 두동 구미리 부모님 산소 앞에 사형제의 충성을 기리는 비석을 세우고 충효정도 지어 1997년 6월 6일부터 관민합동추모제도 지내지만 아직 한이 안 풀린대요. 왜 안 그렇겠어요. 위로 세 형을 보내고 나서 부모님의 씻을 길 없는 한을 남은 자식들이 떠안았는데요. ‘알맹이는 다 보내고 찌끄러기만 남았다.’는 말을 하도 많이 들어 귀에 못이 박였대요. 이부건 어르신이 하는 ‘찌끄러기가 뒷수습을 하고 간다.’는 말 속에서 그의 가슴에 맺힌 한이 엿보였어요. 무엇보다 한(恨)을 풀어내는 데는 전통예술인 국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주인공을 어머니로 해서 초점을 맞췄고요.. 공모 심의위원 앞에서 한(恨)을 풀어내는 데는 국악기만한 악기가 없다고 주장했던 기억도 납니다.

: 뮤지컬은 오페라나 연극보다 비교적 오락성이 강한 장르인데 무겁고 어두운 내용의 소재를 어떻게 풀어낼지 무척 궁금해요.

: 사실을 알리는 데 치중하면 다큐멘터리가 되겠죠. 그러면 교훈을 주고 교육적일지는 모르지만 예술은 재미와 감동이 있어야 흥행이 되죠. 타 장르에 비해 뮤지컬은 돈과 전문스텝들이 많이 동원돼요. 거기다가 배우도 노래나 춤, 대사전달 능력이 가능한 사람을 섭외해야했죠. 음악도 녹음을 하지 않고 현장에서 바로 연주할 예정에요. 이 많은 스텝들이 마음을 맞추기가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이삼 회 공연으로 끝나버리면 너무 아깝죠. 우리의 노력과 흘린 땀이 헛되지 않게 『거룩한 형제』가 울산을 대표하는 뮤지컬로 자리매김하도록 잘 만들어야겠죠. 어려움이 많았던 만큼 좋은 작품이 될 거에요. 그리고 어둡고 무거운 소재지만 재밌고 즐겁고 감동적이며 오랜 시간 여운이 남는 뮤지컬이 될 거에요. 가장 신경을 많이 쓴 부분이니까요. 많이 와서 보고 평가해주세요. 90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도록 귀중한 시간을 만들어드리겠습니다.

: 공연을 관람하는 데 있어 관전 포인트를 좀 말씀해주세요.

박기수 연출가: 전쟁이라는 상황에서 네 명의 아들을 희생한 어머니의 마음을 국악뮤지컬로 표현하려고 합니다. 그분들의 희생을 통해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음을 기억했으면 합니다.

: 포스터 사진을 보니, 땅 위에 뒹구는 철모와 인식표 네 개는 의미를 알겠는데요. 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지 말씀해주세요.

장창호 극작가: 분홍색 동백꽃에 눈이 쌓인 모습인데요. 동백은 울산의 시화로 주인공들이 울산 사람임을 나타냅니다. 분홍색 동백꽃 꽃말이 ‘당신의 사랑이 나를 아름답게 합니다.’인데 작품의 주제와 맥이 닿아 있어요. 동백꽃은 네 종류가 있는데 그 중에 분홍색 동백꽃은 가장 귀해서 자식 넷을 전장에서 잃고 보국훈장 천수장을 받은 어머니의 위신에 빗댄 겁니다. 이 작품 미장센으로 마지막 장면에 이 꽃이 사용됩니다. 그것이 의미를 상상해 보는 것도 공연을 관람하고 난 뒤 여운을 즐기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 될 거에요.

: 이번 현충일에 충효정 합동추모제에서 어머니 역을 맡은 정민지 씨가 뮤지컬 하이라이트 부분을 노래한 동영상을 봤어요. 어머니가 나라에서 내린 보국훈장 천수장을 받기에 앞서 부르는 노래인데요. 식장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을 숙연하게 만들고 감동의 도가니로 빠뜨렸다네요. 한 장면의 노래가 이 정도이니 작품이 무대로 올라갈 그날이 정말 기대됩니다.

거룩한형제 포스터이미지 ※ '국악동인 휴' 제공

너희 목숨 대신하여 보국훈장 나왔단다
자식 목숨 팔아먹은 가엾은 에미
금빛 훈장으로 대접한단다.
아서라 안 간다 난 못 간다

아들 넷 먼저 보낸 죄인
무슨 낯으로
아서라 안 간다 못 간다

그 훈장 이 목에는 못 건다
동백꽃처럼 붉은 끈을 목에다 걸면
아들들의 뼈와 살을 거는 건데
목을 꺾어 숨 멎은 얼굴을 달고
내 어찌 가슴으로 숨 쉬겠느냐
아서라 안 간다 난 못 간다
아서라 난 안 간다 못 간다

내 아들 뼈를 긁어 만든 훈장
내 아들 피를 끓여 만든 훈장
아서라 이 목에는 못 건다

<가사전문>

미국에 헐리우드 흥행 귀재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만든 <라이언 일병 구하기>도 2차 세계대전 당시, 사형제가 전쟁에 참가하여 형제 셋이 죽자 남은 아들 하나를 어머니의 품에 돌려보낸 이야기를 모티브로 했다.
그래도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실제 인물 남은 한 명의 아들 프리츠 닐란드는 어머니에게 돌아갔지만, 우리의 어머니 고 류분기 씨는 막내아들마저 베트남 전에서 잃어야했다. 그녀가 죽은 아들들에 대한 그리움과 자식을 먼저 보낸 어머니의 죄책감의 무게에 못 이겨 뱉어냈던 남은 자식들을 향한 ‘찌끄러기’라는 지칭은 살아남은 자식들에게 또 다른 상처를 남겼고, 막내아들마저 어머니의 간곡한 만류를 뿌리치고 기어코 전쟁터로 향하게 했으며 그는 또 전쟁터의 원혼이 되어 돌아와 어머니가 그나마 잡고 있던 삶의 끈을 놓게 했다.

네 명의 아들을 전쟁터에서 잃은 참척의 슬픔은 그 무엇으로 위로하고 위로받을 수 있을 것인가. 사라진 이들의 숭고한 희생이 뮤지컬 『거룩한 형제』로 승화되어 슬프지만 아름다운 이야기로 길이길이 남기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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