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리뷰

말이 칼이 될 때

- 홍성수 교수가 쓴 ‘말이 칼이 될 때’를 읽고 -

다감이 김금주

다감이 김금주

최근에 아무렇게나 툭툭 내뱉은 말 때문에 후회하는 일이 많았다. 경상북도 예천에 있다는 말무덤(언총/言塚)에라도 가서 입 밖으로 나간 말을 붙잡아 묻어버리고 싶은 심정이다. 보통 언어의 폭력에 관한 책은 상처받은 사람을 치유하는 내용이거나 대화의 기술에 대한 내용이 많아서 내가 가해자가 되었을 때를 진단할 수 있는 책이 필요했다.
마침 그 때 한 지인이 홍성수 교수가 집필한 ‘말이 칼이 될 때’를 소개했다. 그는 지난 6월 울산 혜인학교에서 ‘혐오할 자유는 없다’는 주제로 강의를 했는데 당시 빈자리가 없을 만큼 반응이 뜨거웠고 한다.

표지

표지

제목만으로는 책의 내용을 오해하기 쉽다. ‘말조심해야 한다.’는 내용인 줄 알고 읽기 시작했는데 이 책은 소수자에 대한 혐오표현을 다루고 있다. 여성 , 동성애, 장애인, 종교적 혐오 등 가볍게 읽을 수 없는 것을 주제로 다루고 있어서 다소 어려울 수 있는 내용일텐데 쉽게 설득하듯 풀어낸 저자의 표현 덕분에 몰입해서 읽을 수 있었다.

차별과 혐오라는 표현 때문에 자잘한 말실수가 과한 표현인 것 같은 거부감이 들 수도 있다. 그래서 ‘혐오’는 단어자체의 뜻으로 해석하는 게 아니라, 개인이 갖고 있는 특성을 부정하고 차별하는 것에 포인트를 맞춰 보았다. 의도가 어떻든 누군가를 틀에 가둬놓고 차별하는 순간 그게 바로 혐오표현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리뷰는 책 내용 소개보다는 일상에서 뱉은 내 말이 어떻게 혐오의 표현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근거를 책에서 찾는 것으로 써 보았다.

혐오표현의 유형

책에서는 혐오표현의 유형으로 차별적 괴롭힘, 편견조장, 모욕, 증오선동의 4가지 유형을 제시한다. ‘제주도 예멘난민’문제를 접했을 때 혐오를 인지하면서도 편견조장에 해당하는 말을 쉽게 했다.

“무서워”
“정부는 생색만 내고 피해는 우리가 보는 거잖아.”

저자는 혐오를 인지하고 하는 말 만큼이나 ‘악의 없이’ 쏟아내는 말도 돌아보기를 원한다. 예를 들어 ‘다문화’라든가 ‘휠체어 탄 학생’처럼 차별받는 소수자의 속성을 지칭할 때는 특히 조심해야한다. 누군가는 친근함의 표현일지 몰라도 듣는 이에게는 차별의 딱지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불편함을 드러내면 예민하다고 말하며 그럴 의도가 아니었다고 해명하는 경우가 있다. 혐오표현은 의도는 중요한 고려대상이 아니다. 나쁜 의도가 아니었다고 해도 나쁜 효과를 낳고 있다면 문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 혐오표현의 유형 >

한국국제교류재단의 분야별 주요활동(2018)
유형 내용 예시
차별적
괴롭힘
고용·서비스·교육 영역에서 차별적 속성을 이유로 소수자(개인, 집단)에게 수치심, 모욕감, 두려움 등 정신적 고통을 주는 행위 (직장/학교 등) "한국 여자들이 다 취집을 해서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이 낮다."
편견 조장 편견과 차별을 확산하고 조장하는 행위 "동성애 퀴어축제 결사 반대, 인류 생명의 질서, 가정, 사람의 질서가 무너지면 이 사회도 무너진다."
모욕 소수자(집단)를 멸시·모욕·위협하여 인간 존엄성을 침해하는 표현 또는 행위 "흑인 몇 명이 우리 기숙사에 사는데, 어휴 ○○ 냄새가 아주..."
증오선동 소수자(집단)에 대한 차별, 적의 또는 폭력을 조장하거나 선동하는 증오 고취행위 "착한 ○국인 나쁜 ○국인 같은 건 없다, 다 죽여버려!"

그것은 왜 혐오인가?

홍성수 교수는 자신을 ‘나는 한국의 다수자다. 정규직 노동자이자 비장애인이고 이성애자다.’라고 한다. 이렇게 범주로 규정해보면 소수자가 누가 되는지 구분할 수 있다. ‘왜 그게 혐오냐?’라고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있다면 당신 말의 화살이 가리키는 곳을 보면 된다.
혐오표현은 말 그 자체의 나쁨보다는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전혀 다른 파생을 가지는 것이다.
강자가 약자에게, 상사가 하급자에게, 교사가 학생에게, 주력사회가 소수인종에게 하는 말 등은 같은 말이라도 칼이 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소수’는 상대적인 개념이다. 사회생활하면서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든다.’는 의미의 신조어인 맨스플레인(mansplain) 때문에 불쾌한 일이 많았는데 정작 나이를 무기로 내가 맨스플레인을 하고 있었다. 최근 젊은 친구에게 말폭격을 해 버렸다. 대학을 졸업하고 경제 활동을 하지 않는 친구였는데 꿈만 늘어놓는 것 같아 “아르바이트라도 해야 해요. 밥벌이를 해야 꿈도 있는 거예요. 이런 식으로는 계획이 아무리 많아도 다른 사람에게 먹히지 않지.”라고 했다. 불안한 사회초년생에게 ‘너는 게으르다’는 편견과 차별을 표현해버린 것이다. 나는 그에게 다수자의 입장이고 대응할 수 없는 대상인 것이다. 집에 와서 바로 후회했다.

혐오표현은 편견에서 시작

편견 -> 혐오표현 -> 차별행위 -> 증오범죄. 저자는 이 순서가 혐오표현이 일어나고 나아가는 순서라고 설명한다. 이는 저자가 ADL의 <혐모의 피라미드(The Pyramid of Hate)>를 재구성한 모습으로도 잘 나타냈다.
편견을 가진 사람이 혐오표현을 하는 순간 차별을 낳고 증오범죄까지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저자는 동성애나 인종, 국가적 차별등 사회적 이슈에 대해 언급하지만 일상적으로 쓰는 말 중에 나이라든가 직업, 지역감정 등에 대해 얼마나 많은 혐오표현이 있는지 모른다. 나의 고정관념을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나는 시집이 전주이고 결혼하고 한동안은 ‘너는 안 그렇지만, 경상도 사람 말투가 듣기 싫다’는 말을 들었다. 그럴 때 나는 소수자가 되어 대응할 수 없는 상대에게 침묵하는 수밖에 없었다. ‘너는 안 그렇지만’은 아무런 위로가 안 되는 말장난에 불과했다.

혐오의 피라미드

<혐오의 피라미드>

책임은 가해의 입장에서, 공감은 피해자 입장에서

저자는 혐오발언의 규제에 대해 형법으로 처벌하는 유럽과 자유주의를 택하는 미국의 사례를 비교하면서 차별금지법이라는 구체화한 법률제정을 제시한다. 그렇다면 다감이가 생각하는 혐오발언을 줄일 수 있는 방안은 원칙이다. 책임은 백퍼센트 가해의 측에 돌려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사고나 사건이 있을 때 피해자에게 책임을 돌리는 말을 자주 했다. 모임에서 데이트폭력사건을 이야기 하던 중에 “아니, 그거 이해가 안 된다. 사귀면서 모르나. 감이 올 텐데.”라고 했고, 새벽2시에 모르는 사람이 태워 준 차를 타고 가던 여자가 성폭행피해를 입었을 때 “아니 이해가 안 돼. 그 새벽에 모르는 사람이 태워준다고 어떻게 타지?” 최근에는 기습폭우로 한강을 걷던 60대 황 모 씨가 고립 후 구조되었다는 기사를 보고 “비가 그렇게 오는데 나이도 드신 분이 한강변을 왜 걸었을까”라고 말했다.

피해자에게는 2차 폭력인 것이다. “좋다고 사귄 사람에게 어떻게 그럴 수 있어. 정신병자 아냐. 남일이 아냐”, “그 새벽에 잠도 안자고 어떻게 그렇게 나쁜 짓을 하냐. 계획적 범행이네.”, “비가 많이 오고 있었을 텐데 통행을 막았어야지. 재해대책이 부실하네.” 등의 말로 피해자 입장에서 공감하는 생각과 말을 했어야 한다.

변화의 시작은 바로 나

말을 하기 전에 지금 내가 내뱉으려는 말이 세상 밖으로 나오는 게 나을지, 언총에 묻는 게 나을지 한 번 고민해보자. 듣는 사람이 불편하면 칼 같은 말이다.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하나둘씩 언총에 묻으면, 우리 사회가 평온해지지 않을까

책을 읽고 혐오표현이 단순히 기분 나쁜 말, 듣기 싫은 말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칼이 되고 폭력이 되고 영혼을 죽이는 일이 될 수도 있다는 자각을 한 것만으로도 울림이 깊었다. ‘말이 칼이 될 때’는 토론하기 좋은 책으로 추천하고 싶다. 주위 사람들과 ‘소수자’로서 존재했던 경험과 ‘다수자’로서 실수했던 경험을 나눈다면 혐오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뱉은 칼 같은 말을 종이에 적어서 보았다. 와 대단하다. 말이 형체를 가지니 부끄러워 죽을 판이다. 바로 물에 풀어 버렸다. 미안합니다.

맨스플레인

맨스플레인(mansplain)은 남자(man)와 설명하다(explaining)를 붙인 합성어로 남성이 여성에게 거들먹거리거나 잘난 체하는 태도로 설명한다는 뜻이다.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는 의미의 신조어지만 사실 누군가에 무언가를 가르치려 할 때 모든 관계에서 해당되는 말일 수 있다.

말무덤(언총,言塚)

경상북도 예천군의 한대마을에 가면 400-500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말무덤이 있다. 타고 다니는 말(馬)을 묻은 무덤이 아니라 우리가 내뱉는 말(言)을 묻은 무덤이다.
옛날부터 여러 성(姓)씨가 모여 살던 한대마을에서는 사소한 말 한마디가 씨앗이 돼 싸움이 그칠 날이 없었다. 이에 마을 어른들이 해결방안을 찾던 중 마을을 지나가던 나그네가 말싸움의 원인과 예방책을 알려줬다.
그는 싸움의 발단이 된 거짓말, 상스러운 말, 가슴에 상처가 되는 말 등을 사발에 모아 구덩이에 묻으라고 말했다. 예방책대로 구덩이 위에 돌과 흙을 쌓아 올려 말무덤(言塚)을 만들었다. 이는 남에게 상처가 될 가벼운 말은 입 밖에도 꺼내지 말라는 의도다. 이후 한대마을에 말싸움이 없어지고 평온해져 현재까지도 이어져 오고 있다.

※ 본문에 인용한 내용들(이미지, 표 등)은 저자 홍성수님의 허락을 받아 게재하였습니다.
      승락해주신 홍성수 작가님에게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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