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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뮤지컬 "거룩한 형제"에서 읽어보는 울산의 콘텐츠

다감이 윤경희

다감이 윤경희

울산문화재단 다감이로 활동한지 일 년이 되어간다. 2018년 다이어리에 매월 빨강색으로 표시된 것은 어김없이 웹진 기획회의와 취재, 원고마감일이다.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한 것이 없지만 특별히 애정이 가는 취재가 있다.

창작뮤지컬 '거룩한 형제'의 한 장면

창작뮤지컬 '거룩한 형제'의 한 장면

지난해 9월과 12월, 울산문화예술회관과 울산도서관에 공연을 올린 뮤지컬 『거룩한 형제』였다. 이 작품이 만들어져 공연에 올리기까지 과정을 취재하고 공연을 관람한 사람으로서 재단에 부탁하고 싶은 말이 있다.

이 작품은 울산문화재단에서 ‘2018년도 지역문화예술지원사업’ 중 하나로 선정되어 지원금을 받고 만들어졌다. 뮤지컬 『거룩한 형제』의 소재가 되는 ‘용감한 사형제’ 이야기는 시민들에게 널리 알려진 내용이 아니라서 사전정보제공을 위해 취재했다.

창작뮤지컬 '거룩한 형제'에서 기리는 '용감한 사형제'

창작뮤지컬 '거룩한 형제'에서 기리는 '용감한 사형제'

다감이는 이 형제들의 뜻을 기리고자 추모행사가 열리는 충효정을 찾아갔고 극단 ‘휴’의 관계자와 작가, 연출자 등과 인터뷰를 했다. 그 과정에서 뮤지컬 하나가 완성되기까지 수많은 관계자들이 쏟아 붓는 열정과 그들이 넘어야 할 난관과 고민을 접하게 되었다. ‘알면 사랑한다’는 말처럼 공연에 대해 자연히 관심과 기대가 다른 관객들에 비해 남달랐다. 가장 걱정했던 부분은 관객동원이었다.

입구 모습>

입구 모습

공연 당일, 공연시작 30분전인데도 공연장 입구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 없이 북적였다. 다감이는 다행히 공연 시작 한 시간 전에 도착해 괜찮은 자리를 확보할 수 있었다. 관계자들이 홍보에 애를 쓴 결과였다. 다감이는 지역방송 자막을 비롯해 사형제 추모행사장과 동헌 앞 금요문화마당에서 작품을 홍보하기 위해 나온 이들을 만날 수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뮤지컬 『거룩한 형제』는 웃음을 날줄로 삼고 울음을 씨줄로 엮어 관객들을 감동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멋진 공연이었다. 공연은 어머니가 전쟁에 나가 생사가 불분명한 자식을 기다리는 것으로 시작했다. 일상이 한 곳에 집중된 주인공의 삶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긴장을 품고 있다. 무겁고 비극적인 분위기를 가볍고 희극적인 것으로 바꾸어 주며 관객들에게 재미와 즐거움을 제공하는 사람들은 주인공이 운영하는 국수집을 배경으로 모인 주변사람들의 일상이었다.

공연 당일 티켓

일상을 잃어버린 주인공의 삶이 이들과 대비되어 더욱 비극적으로 느껴졌다. 조연들은 무거움을 희석시키는 양념 역할을 톡톡히 했으며 작품의 비극적 요소를 더욱 극대함으로써 완성도를 높이는데 충분히 기여했다고 본다.

창작뮤지컬 '거룩한 형제' 한 장면

창작뮤지컬 '거룩한 형제' 한 장면 ※ 국악동인 휴 제공

최고의 사랑꾼은 ‘밀고 당기기’의 달인이라고 한다. 상대방의 마음을 자신에게로 몰입하게 하는 힘은 긴장과 이완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그 승패가 달려있다고 하는 카사노바의 말은 예술작품의 완성도에도 해당되는 것 같다. 뮤지컬 『거룩한 형제』에 관여한 관계자들도 마찬가지의 고민이 있었을 것이다. 인터뷰 당시, 긴장감이 넘치는 소재에서 어떤 방식의 이완을 끌어낼지 걱정하는 다감이의 질문에 박성태 프로듀서는 자신감 가득한 목소리로 재미와 감동을 장담했다. 프로듀서의 장담이 허언이 아니었다.

이 작품의 하이라이트는 주인공 어머니역을 맡은 정민지 씨의 노래였다. 보국훈장 천수장을 받으러 오라는 연락을 받은 어머니의 심정을 노래로 풀어내는 장면이었다. 객석 여기저기에서 훌쩍임과 심지어 코푸는 소리까지 들렸다. 다감이는 취재과정에서 이미 여러 번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장면에서 세익스피어의 『맥베드』나 『햄릿』을 읽을 때보다 더 비극적인 슬픔을 경험했다. 참척의 슬픔을 표현하는 배우의 목소리도 더할 나위 없이 애잔하고 한스러웠지만 힘없고 나약한 한 인간이 감당하기에는 그 크기가 너무 큰 불행에 깊이 몰입되어 가슴이 미어져 울음조차 나오지 않았다.

창작뮤지컬 '거룩한 형제' 한 장면

창작뮤지컬 '거룩한 형제' 한 장면 ※ 국악동인 휴 제공

관객을 웃음과 울음으로 버무려 놓더라도 마무리가 겨자를 넣지 않은 냉면을 먹은 기분을 느끼게 하는 작품이 있다. 그러나 이 공연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미장센은 한마디로 엄지척이였다. 한 많은 인생을 산 어머니의 마지막 날, 안개 속에서 등장하는 네 아들의 손에는 꽃신이 들려있다. 어머니는 꿈에도 그리던 네 아들을 만나 꽃신을 신고 아들의 등에 업혀 환하게 웃으며 먼 길을 떠난다. 이 장면에서 연출가는 죽음은 다른 세계에서의 새로운 시작이라는 우리의 전통적 내세관으로 관객과 어머니의 비극적인 삶을 위로하려던 것이 아니었을까.

다감이의 어린 시절에는 ‘해원굿’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구경거리가 많이 없던 시절에 징과 북장단에 맞춘 무당의 사설과 춤도 볼거리였지만 죽은 이의 한을 풀어주고 위로하는 장면은 아직도 가슴에 남아있을 정도로 감동적인 것이었다.

사자에 빙의된 무당이 억울하고 분하다고 사설을 늘어놓으면 그와 관련된 산자들이 나와 잘못을 빌고 용서를 구했다. 산자와 죽은 자가 화해에 이르고 각자의 길로 돌아서는 것으로 굿은 끝이 났다. 굿은 죽은 자를 위한 것 같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산자들의 죄책감을 풀어주고 새로운 삶을 살게 하기 위한 하나의 축제라는 생각이 든다. 뮤지컬 『거룩한 형제』는 현대판 해원굿판이 아니었을까.

진정한 죽음은 산자들의 기억에서 사라지는 것이라고 한다.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사형제의 죽음은 죽음이 아니었으며 죽은 아들의 기억을 껴안고 살았던 어머니의 삶도 삶이라고 부를 수 없는 것이었다. 우리의 평안한 일상은 충효정의 주인공들과 어머니의 ‘죽음 같은 삶’에 빚지고 있음을 상기시키고, 빚진 자로서 그들의 한을 풀어주는 한판 굿판을 뮤지컬 『거룩한 형제』는 벌였다고 본다. 공연장을 나서는 발걸음이 가볍고 가슴은 동치미 국물을 마신 듯 시원했다.

창작뮤지컬 '거룩한 형제' 한 장면

창작뮤지컬 '거룩한 형제' 한 장면 ※ 국악동인 휴 제공

지금까지 울산의 역사와 문화적 배경을 가진 창작뮤지컬이 여러 편 만들어졌다. 다감이가 알기에는 대부분의 작품들이 아쉽게도 한두 번 무대에 오르고 사라지는 비운을 면치 못했다. 창작뮤지컬 하나가 만들어지는데 들어간 비용과 노력을 생각하면 짧은 수명이 씁쓸하다 못해 속이 쓰리다. 멀리서 지켜보는 사람의 마음도 이러한데 관계자들의 심정은 말할 것도 없으리라.

제대로 된 뮤지컬 한편이 만들려면 다른 장르에 비해 몇 배의 경비와 노력이 들어간다고 한다. 뮤지컬은 회를 거듭할수록 완성도를 높여가는 열려있는 장르다. 명성이 자자한 뮤지컬의 경우 셀 수 없이 많은 공연기록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아도 공연 횟수가 작품의 완성도에 미치는 영향의 크기를 짐작해볼 수 있다.

우리나라 창작뮤지컬 중 수명이 가장 긴 것으로는 다감이가 알기에 ‘명성황후’ 정도다.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졌다 하더라도 성공신화를 지니고 있는 대부분의 뮤지컬이 세계의 명성에 기대고 있다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창작뮤지컬 '거룩한 형제'를 마치고 무대를 정리하는 모습

창작뮤지컬 '거룩한 형제'를 마치고 무대를 정리하는 모습

한류열풍으로 우리는 굴뚝 없는 문화산업의 저력을 실감하고 있다. 잘 만든 공연 하나가 지역 경제를 풍요롭게 한다는 것을 다감이는 중국여행에서 경험했다. 중국 항저우의 ‘인상서호’나 계림의 ‘인상유삼저’가 그 예이다. ‘인상유삼저’의 경우, 그 지역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를 소재로 했다. 한 아가씨가 부호의 청혼을 뿌리치고 목동과 결혼한다는 평이한 내용에 출연진도 대부분 예술과 관련 없는 그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하루 관람객만도 만 명이 넘는 이 공연은 여행객이라고 다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이에 비하면 뮤지컬 『거룩한 형제』는 소재나 주제 면에서 결코 ‘인상유삼저’에 뒤지지 않는다. 문제는 초기지원에 있다.

창작뮤지컬 '거룩한 형제' 한 장면

창작뮤지컬 '거룩한 형제'를 마치고 무대를 정리하는 모습

울산도 이제 굴뚝 산업도시에서 에코도시 문화관광도시로 거듭나려 하고 있다. 죽은 태화강을 살리는 것을 시작으로 그동안 경제개발에 묻혀 있던 지역과 관련된 이야기를 수면으로 끌어내어 문화컨텐츠로 개발하려는 움직임은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다.

그러나 많은 노력과 열정을 쏟아 만든 작품이 한두 번의 공연으로 막을 내리는 것은 무척 아쉬운 일이다. 이제 입소문이 자자해서 비싼 돈을 지불하고라도 관람하고 싶은 작품이 나올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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