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리뷰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100주년을 바라보며-

다감이 정정윤

다감이 정정윤

2018년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99주년입니다. 내년(2019) 100주년을 앞둔 뜻깊은 해에 중국에 파견 나와서 이 글을 적을 수 있게 되어 매우 뜻깊게 생각하며 조국에 향한 애국심이 남다르게 느껴집니다.

기념동판

대한민국임시정부를 기리는 기념동판

제가 갔을 때는 가이드 인솔로 관람하시는 관광객이 많았습니다. 조선족 해설가의 설명을 들으며 함께 그 시대의 임시정부를 바삐 드나들었을 독립투사들을 상상할 때 이곳저곳에서 그분들께 대한 존경의 탄성과 애잔한 마음이 교차되어 다함께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관람을 하였습니다. 어쩌면 여유롭게 관람하지는 못했을 수도 있지만, 그 만큼 우리의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가 되니 대단히 기쁘기도 하였습니다.

임시정부청사 전시관 내부는 기념촬영이 금지되어 있는 곳이라 밖에서 열심히 사진을 찍었습니다.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상하이 관광지 중 쇼핑몰이 밀집한 곳인 신천지(新天地) 주변에 위치해 있습니다. 찾고자 노력하지 않으면 찾기 힘든 정도로 일상적인 곳입니다.

1989년~2018년까지는 4월 13일을 임시정부 수립일로 기념해왔으나 잘못 지정된 기념일이라는 지적에 따라 내년(2019년)부터는 4월 11일로 변경하여 임시정부 수립일을 기념하는 것이 확정되었습니다.

인증_표사진

대한민국 임시정부유적지 앞에서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 정부

관람시간 :화-일 9:00-17:00 / 월요일 9:00-13:30 비공개
입장가능시간 :9:00~11:30 / 월요일 13:30~16:30
관람료 :20.00元(RMB)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잔혹한 일제의 식민 통치와 압박에 대항하여 한민족의 자유와 자주 독립을 주창한 3.1운동(1919년)의 결과로 수립되었다. 3.1운동 지후 블라디보스토크·상하이·서울 등의 지역에서 임시정부가 각각 수립되었으나 단일정부로 통합되어야 한다는 국민적 여망에 따라 1919년 9월 마침내 상하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로 통합되었다.

당시 프랑스 조계지에 위치했던 상하이 임시정부는 일본 정부의 감시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었다. 임시정부는 수립 직후부터 항일독립운동을 주도하기 위하여 ‘대한민국임시헌법’ 등 법규를 제정하고 군사·외교·재정·교육·홍보 등 다방면에서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였으나 1932년 한인애국단의 이봉창, 윤봉길 두 의사의 의거 이후 가중되는 일제의 탄압과 임시정부 요인에 대한 검거를 피해 상하이를 떠나 중국 각지로 이동하다가 1940년 충칭에 정착하였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한국 역사상 최초의 민주공화정부로서 수립 이후 광복을 맞이하여 환국할 때까지 항일독립운동의 대표기관으로서의 역할과 암흑기 민족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였다.

1992년 한국과 중국의 수교가 이루어지고 이후부터 몇 번의 복원공사(최근 2012년)를 거쳐 현재의 유적지 모습으로 재탄생했다.

- 출처 :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 기념관

매표소에는 당시 임시정부의 창설하는 배경에 대한 비디오 시청을 할 수 있으며, 화장실이 있습니다.
임시정부청사 건물 그 옆에 비디오 관람할 수 있는 곳이 있는데요, 제가 갔을 때는 남성만 시청할 수 있다고 제지하셔서 보지 못해서 아쉬움이 남습니다.

1층 들어가면 그 당시 태극기, 오랜 세월 빛바랜 태극기지만 그 어떤 태극기보다 아직도 바람에 흩날릴 수 있다는 듯이 크게 펼쳐져 있습니다. 뭉클해집니다. 그리고 계단 아래에 생각지도 못한 간소한 화장실이 있어서 놀라웠습니다. 2층,3층의 임시정부청사를 둘러보며 가파른 계단을 오르내리면서 이곳에서 조국독립을 위한 수많은 고민과 결정...그리고 독립투사들의 비장한 결의가 느껴지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려 섣불리 걸음을 뗄 수 없었습니다.

2층에는 김구 선생의 집무실을 보실 수 있는데요. 『백범 일지』의 상편이 바로 상하이 임시정부시절에 집필한 것이라고 합니다.

이분들이 있었기에 대한민국이 있는 것이니 숙연해지고 너무나 감사할 따름입니다. 우리는 이국땅에서 굳은 의지로 용감히 싸우다 영면한 한국의 우수한 젊은이들과 일제를 피해 지원해준 중국에 대해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비록 그 당시 것 그대로 보존이 아닌 새로 리모델링한 임시정부 청사 전시관일지라도 오래토록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그 다음에는 윤봉길의사의 의거 장소이자 윤봉길의사 생애사적 전시관(매원)이 있는 홍커우공원으로 향했습니다. 현재는 중국의 대문호 루쉰의 기념관이 있어서 루쉰공원이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1920년대에 들어 임시정부는 심각한 독립운동 자금난을 겪는 와중에 한국과 중국 사이를 이간질시킨 ‘만보산사건’(1931.7)을 일으키면서 중국에서 독립운동은 더욱 어려워졌다.

일제는 1929년 말 시작된 세계대공황으로 인한 일본 내부의 사회·경제적 불안과 위기를 해소하기 위해 침략적 여론을 강화하면서 만주와 몽골침략을 더욱 노골화하였다.(제국주의) 마침내 1931년 9월 만주침략을 시작으로 1932년 1월에는 상하이까지 침략하였다. 상하이 주요 지점을 장악한 일제는 일방적으로 전쟁 승리를 선언하였다.

이 사건의 계기로 너무나도 잘 아는 역사책의 그 인물 윤봉길의사가 등장하게 됩니다.

전시관 전경

윤봉길 의사 생애사적 전시관으로 가는 길

전시관 입구

윤봉길 의사 사적 전시관 입구

매헌 윤봉길 의사 생애사적 전시관

관람시간 :월-일 7:30-18:00(1-6월,10-12월)/ 7:30-18:30(7-9월)

관람료 :15.00元(RMB) / 학생증 소지자 7元(RMB)

윤봉길 의사의 업적을 확인할 수 있는 비석

윤봉길 의사의 업적을 확인할 수 있는 비석

본 비석에는 윤의사의 업적에 대해 소개하고 있습니다. 비에 젖은 비석은 현재의 우리에게 강한 메시지를 주는 듯 했습니다.

매정(1994년 건축) 윤의사의 업적을 소개하고 경의를 표하기 위해서 지은 곳입니다. 붉은 단풍 사이로 보이던 매정, 당시 비가 적적하게 내리어 숙연해지더라구요. 경건한 마음으로 향했습니다.

윤봉길의사 전시관으로 가는길

윤봉길의사 전시관으로 가는길

매정에는 윤봉길의사의 생애 사적(사진,영상,복제 물품)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1층에는 김구선생과의 유명한 일화 속 시계 복제품도 전시되어 있습니다.
그의 나이 25세, 짧은 생애 속 굉장한 업적들에 대해 소개되어 있는데요.

윤봉길 의사 사적 전시관 내부모습

윤봉길 의사 사적 전시관 내부모습

한국인의 자주 독립의지를 전 세계에 알리고 순국한 윤봉길의사의 업적을 보고 있노라면, ‘만약에 나였다면 가능했을까?’, ‘지금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질문을 던지지만 선 듯 답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장부출가생불환’

사내 대장부가 집을 나가 뜻을 이루기 전에는살아 돌아오지 않는다.
전시관 내부에 마련된 동상

전시관 내부에 마련된 동상

이 글을 남기고 망명길에 오른 윤의사, 정말 대단한 인물이셨네요. 조국을 위해 저런 말을 남길 수 있는 이가 몇 될까요.

너희도 만일 피가 있고 뼈가 있다면 반드시 조선을 위해 용감한 투사가 되어라. 태극의 깃발을 높이 드날리고 나의 빈 무덤 앞에 찾아와 한 잔 술을 부어 놓으라 그리고 너희들은 아비 없음을 슬퍼하지 말아라

- 유촉시 ‘강보에 싸인 두 병정에게’

1층에서 전시를 다 관람 후에는 2층에서 윤의사의 생애가 요약·정리된 한편의 비디오를 시청하실 수 있습니다. 마지막쯤에 윤의사가 아들들에게 남긴 유언을 성우가 낭독해주는데요, 듣고 있노라면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전시관 외부에 마련한 연대표

전시관 외부에 마련한 연대표

매헌 윤봉길 의사(1908.6.21.~1932.12.19.)

1932년 1월, 윤의사는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김구를 찾아가 동경의거와 같은 거사에 참여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한인애국단장 김구는 1932년 4월 29일에 홍커우공원에서 상하이사변 승전 기념행사와 일왕의 생일 기념식이 개최된다는 사실을 알고 의거 준비에 착수하였다. 윤의사는 4월 26일 ‘조국 독립과 자유를 회복하기 위해 적의 장교를 도륙할 것’을 맹세하는 입단 선서문을 쓰고 한인애국단에 가입하였다.

1932년 4월 29일 그의 나이 25세, 일제가 중국 상하이에서 강행한 상하이 점령 전승 기념행사에서 참석한 일본군 수뇌부를 향해 물통 폭탄을 투척하였다. 의거 결과 단상에 있던 일본 총사령관, 거류민단장 등이 사망하고 다수의 일제 대표 인사들이 중상을 입었다.
홍커우공원 의거 직후 현장에서 붙잡힌 윤의사는 항하이일본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1932년 12월 19일 일본 가나자와시 미쓰고지 육군공병작업장에서 순국하였다.

윤의사의 의거는 정의와 자유를 위한 거룩한 투쟁이었으며, 한·중 간의 항일 공동 전선 구축을 가능케 한 밑거름이었다.

- 출처 : 매정 윤봉길의사 생애사적 전시관
만국공묘(송경령기념관)

주소 :上海市 陵园路 21号 宋庆龄陵园
관람시간 :월-일 8:30-16:30

상하이(上海)에서 활동하다가 타계한 한인들의 묘는 원래 ‘징안스루(靜安寺路)’에 있었다. 중국의 문화대혁명(1966~1976)과 상하이의 도시재개발사업 등으로 인해 철거된 후 한인독립운동자 등 외국인 묘 가운데 일부가 이곳으로 이전됐다.

- 출처 : 국외독립운동사적지

상하이에 또 다른 우리 역사의 흔적이 있을까 찾던 중에 발견한 곳입니다. 상하이에서 활동했던 독립투사들이 잠들어 있는 공동묘지입니다. 쑨원의 아내 송경령의 능원이 있는 곳이라 송경령 기념관으로 불려 집니다.

만국공묘에는 14기의 한국 독립운동가들의 묘역이 안장되어 있습니다. 한 분 한 분의 묘지에 그 분들의 활동, 업적을 기리며 경건한 마음으로 감사한 마음을 담아 묵념하였습니다.

1993년 이후 신규식, 노백린, 안태국, 김인전 선생 몇 분의 유해는 고국으로 봉환되어 국립묘지에 안장되어 있다고 합니다.

항저우 대한민국 임시정부
윤봉길 의사의 의거 이후 한국 독립운동가에 대한 일제의 대대적인 탄압으로 상하이를 떠나 항저우, 짜싱, 쩐장, 창사, 광저우, 류저우, 치장 등 중국 각지로 이동하다, 1940년 충칭에 정착하였습니다.

- 출처 : 항저우 대한민국임시정부 기념관,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 기념관

끝으로, 11월호에 중국 공연 [인상서호] 관람 리뷰 소개했었는데요, 바로 그곳 근처에 항저우 대한민국 임시정부청사 기념관이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저는 유일하게 상하이에만 임시정부가 존재한다고 생각했는데요, 상하이에 고속열차로 1시간 소요에 위치한 항저우에도 임시정부청사 기념관이 있었습니다. 월요일부터 일요일, 9:00 ~ 16:30 사이에 관람이 가능하다고 하네요.

저는 관람시간 이후에 도착하여 앞에서 보기만 하고 들어가 보지 못해 아쉬움이 남습니다.

제가 다녀온 곳 이외에도 상하이에는 항일투쟁 역사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습니다. 우리가 대표적으로 아는 이 몇군데 말고도 20여 곳이 넘는 흔적들이 있는데요. 안타깝게도 상하이 도시개발 사업으로 터만 남은 곳이 대부분이지만, 상하이에 방문하기 전에 <국외독립운동사적지> 홈페이지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으니 알아보고 가시면 더욱 뜻깊고 의미 있는 여행이 되실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일제의 감시를 피해 이동했던 이동경로를 연도순으로 정리했습니다. 포기하지 않고 이렇게 끝까지 목숨을 바치며 투쟁하신 선조들께 경의를 표하며,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중국에서 접한 우리 역사의 흔적은 타지에서 접해서 그런지 더욱 애국심을 불타게 하는 것 같습니다. 아울러 내년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크게는 세계 평화, 더 크게는 한민족의 평화정착 원년의 해가 되길 바래봅니다.

※ 대한민국 임시정부 이동경로와 각 지역에서의 활동

上海 상하이 1919.4~1932.5 → 杭州 항저우 1932.5~1935.11 → 嘉興 짜싱 1935.11 → 鎮江 쩐장 1935.11~1937.11 → 長沙 창사 1937.12~1938.7 → 广州 광저우 1938.7~1938.9 → 柳州 류저우 1938.11~1939.4 → 綦江 치장 1939.4~1940.9 →重庆 충칭 1940.9~1945.8

※ 참고자료

-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 기념관 안내자료
- 매정 윤봉길의사 사적 기념관 안내자료
- 항저우 대한민국임시정부 기념관(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 기념관)
- 만국공묘 국외독립운동사적지 http://oversea.i815.or.kr
-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기념일 정보 https://www.together100.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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