톡톡칼럼

재난 앞의 예술, 그리고 예술인 복지

심다혜 (울산문화재단 예술지원팀 대리)

재난 사회의 예술

코로나19라는 재난에 일상이 멈춘 지도 어느덧 4개월, 우리는 세계적 감염병 대유행 속에서 봄을 보내고 있다. 코로나19의 지역사회 확산 장기화로, 예술계는 큰 타격을 입었다. 각종 공연과 행사가 줄줄이 취소되었고, 공공 극장을 포함하여 민간 소극장들은 운영을 중단하였으며, 예술인들은 사실상 장기 실업 상태에 놓였다.

사태가 심각해지면서 문화체육관광부에서는 예술인들의 피해 구제를 위해 다양한 지원책을 발표했다. 소규모 공연장 대상으로 한 방역물품 지원을 비롯해 예술인 긴급 생활자금 융자 지원 등 예술인 복지 사업도 확대했다. 각 지방자치단체와 광역문화재단에서도 자체 예산을 편성하여 ‘코로나19로 인한 지역 예술인 피해 실태조사’를 실시하고, 다양한 지원책을 발표했다. 하지만 일련의 지원책들은 대개 선별적이거나 일시적이기 때문에, 예술인들의 일거리 보장에 대한 근본적 대책이 될 수 없는 것은 누구나 공감하는 사실이다. 2009년 신종플루(H1N1), 2015년 메르스(MERS, 중동호흡기증후군) 이후 정부는 ‘원인불명 감염병 진단분석 특별조직(TF)’을 만들어 검사법을 미리 준비했다. 반면, 예술 분야에 있어서는 재난사회 예방과 대응에 대한 논의가 거의 이뤄지지 않은 채 코로나19 정국을 맞았다. 예술인들은 또다시 생계의 위협에 놓였고, 예술의 사회적 가치와 노동으로서의 예술을 인정받기 위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예술인 복지를 위한 쟁점

2003년 조각가 구본주의 죽음과 관련해 보험사가 예술가를 일용직 노동자로 규정하려 했던 사건, 2011년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의 생활고로 인한 사망 사건 등에서 예술인의 열악한 창작 환경과 복지에 대한 우리 사회의 허점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예술인복지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확대되자, 2011년 11월 예술인 복지와 권리 보호를 위한 ‘예술인복지법’이 제정되었고, 그다음 해인 2012년,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재)한국예술인복지재단(이하 예술인복지재단)이 설립되었다. 각 지방자치단체에서도 ‘예술인복지법’에 명시된 예술인의 지위 및 권리 보호와 예술인의 복지 증진에 관한 시책 수립·시행 책무에 따라 ‘예술인 복지 증진에 관한 조례’ 발의에 나섰다. 예술인복지재단은 ‘예술인복지법’ 의거 설립된 전담 기관으로, 예술인의 불공정한 창작 환경을 개선하고 권익을 보장하기 위한 표준계약서 보급, 불공정 행위의 신고·처리를 위한 예술인 신문고 운영, 사회보장의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산재보험·국민연금·의료비 지원, 창작 역량 강화를 위한 창작준비금 지원과 예술인 파견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예술인복지법’은 이처럼 예술인의 창작안정망 구축과 예술인복지를 위한 법률로써, 예술인의 법적 지위를 위한 초석을 다질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당초 법안 발의 시 의도하였던 예술인의 근로자의제(고용보험과 산재보험 지원)를 부여하지 못하고, 자영업자로서만 인정하여 산재보험만 지원하게 된 점은 매우 아쉬운 점으로 꼽힌다. 또한 성추문이나 블랙리스트와 같은 예술인 권리 침해 사건에 있어 피해자 구제나 가해자 처벌을 위한 법적 근거가 뒷받침 되지 않아 온전한 문제해결을 못 하고 있는 상황이다.

힘내라!울산문화예술인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방역물품 전달 울산문화재단

(재)한국예술인복지재단 서울 지하철역 광고, “물감 살 돈이 없어 그림을 못 그리겠다면 지금 당장 연락하세요” (사진출처: 경향신문)

촛불혁명으로 들어선 문재인 정부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태와 미투 운동(#MeeToo)에 대한 대응을 선언했다. 헌법에서 규정하는 표현의 자유와 예술인의 권리 보호를 위해, 블랙리스트 재발 방지와 한국형 * ‘앵떼르미땅’ 제도 도입을 약속하는 국정과제를 발표했다. 이에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 위원회’를 설치하고 진상조사를 실시했으며, 예술계 공청회와 간담회를 거쳐 ‘예술인의 지위와 권리에 관한 법률’(이하 예술인권리보장법)과 ‘고용보험법’ 개정안(예술인고용보험법)을 마련하였다. 고용노동부는 '전 국민 고용보험 시대'를 선언하며 특수고용직 종사자, 예술인에 대한 고용보험 적용 방안을 발표했고, 지난 5월 말, 고용보험 적용 대상 확대를 골자로 한 '고용보험법' 개정안(예술인고용보험법)이 20대 국회 막바지에 통과되었다. 다만,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논란과 성폭력 사태의 재발을 막기 위한 ‘예술인권리보장법’은 끝내 20대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결국, 예술 창작·표현의 자유 보장, 예술인 노동권 마련, 성폭력 없는 예술 환경 조성 등 예술인의 사회·경제적 지위 및 권리 보호의 단초가 되는 ‘예술인권리보장법’은 21대 국회로 넘겨졌다.

* 앵떼르미땅(Intermittent du Spectacle): 프랑스 비정규 공연예술인을 위한 실업보장 제도

앞으로의 과제

2021년, 울산문화재단은 ‘예술인복지법’과 ‘울산광역시 예술인 복지 증진에 관한 조례’에 근거하여 울산예술인복지센터 설립을 추진할 계획이다. 울산예술인복지센터는 예술인활동증명 대행 서비스를 시작으로, 지역 예술인 실태조사, 예술계 종사자 직무 교육 및 컨설팅, 예술인복지재단 연계 사업 추진 등 우리 지역의 예술인들의 복지와 권리 보장을 위해 다양한 복지사업을 추진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우리 사회는 ‘포스트 코로나’(코로나 이후)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 빠르면 6개월 안에 시행된다는 예술인고용보험법은 법률의 핵심적인 사항들이 대통령령으로 정해져 있어, 시행령 내용에 대한 보다 촘촘한 논의가 필요하다. 더욱이 예술인 권리 침해와 불공정행위에 대한 구제, 권익 보호를 위한 법률 제정 과제도 남아있다. 감염병과 같은 재난의 위험 앞에 예술은 언제까지나 수동적일 수 없다. 언제나 예술은 예술 그 자체로 존재해야 할 것이다. 우리 사회에 새롭게 다가올 수 있는 재난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예술생태계를 위해, 이제는 능동적 시스템이 발현될 수 있기를 바란다.

  • 필자소개

    울산문화재단 심다혜 대리는 예술지원팀에서 지역 예술인의 안정적 창작 활동을 위한 예술지원사업 일부를 담당하고 있다. 재단 경영 혁신TF 팀원으로도 참여하고 있으며, TF에서는 외부고객(예술인, 시민) 만족을 위한 혁신 과제를 맡고 있다. 평소 예술인 직업권 및 지위 보장을 위한 예술인복지 정책에 관심을 두고 관련 기타 외부 활동에도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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