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당연한 것을 뻔하지 않게 살려내는 것,
지역문화는 누가 어떻게 키워가야 할 것인가?


문화예술진흥팀

울산문화재단이 전국 15개 기관들과 경합을 벌인 끝에 최종 7개 지역 문화 전문 인력양성기관 중 하나로 선정되었다. 앞으로 더욱 바빠질 지역 문화 전문 인력 양성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깊이 있게 할 수 있는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이므로 사업의 여러 배경에 대해 알아보자.

지역문화 전문인력 양성은 무엇인가?

지역 문화 전문 인력 양성은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 2015년도부터 2년 주기로 양성기관을 지정·운영해 온 사업이며, 올해는 선정된 7개 지역은 2018년도까지 2년 동안 전문 인력 양성사업을 운영한다. 이는 통상 단년도 사업으로 운영하는 다른 사업들과 결이 다른 것으로, 지역 문화 전문 인력의 중장기적인 접근이 필수라는 사실을 전제로 하고 있다. 올해는 예년보다 증가한 7개 사업이 선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15년도 선정되었던 5개 기관 중 올해 재선정된 곳은 3곳에 불과하며, 총 15개 기관 가운데 치열한 경쟁 끝에 울산문화재단을 포함한 4곳이 신규로 선정되었다.

기존에 각 지역에서 추진해온 '문화기획자'양성과정들과 혼동하는 경우가 많은데, 본 사업은 기획자를 포함하여, 문화매개인력(퍼실리테이터 外), 문화복지인력, 에듀케이터 등 문화 전문 인력이자, 특정지역에 '정착'하여 내부와 외부의 네트워크를 아우르는 지역 활동가를 양성하고, 이들이 기존 예술인·활동가들과 함께 지역 문화의 변화를 일으키기 위한 총체적 지원이 궁극적인 목적이라 하겠다.

또한 현장 중심의 전문과정을 이수한 활동가들은 국내 통합과정과 국외연수까지 다녀오는 커리큘럼에 참여하게 되는데, 해당과정이 우수 이수자에 대한 상으로서 그저 놀고 오는 일정이라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사업의 전 과정은 전문 인력들이 각자의 지역에 정착하여 그곳의 현안과제가 무엇이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무엇을 누구와 어떻게 해나갈지를 발견하고 실행해 가는 작업을 지원하기 위해 구성하였으며, '다양한 현장 경험'의 총량이 절대적인 지표로 작용함에 따라 국내·외 현장 활동을 지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토록 중요하게 다룰 문화·예술은 대체 무엇일까?

문화와 예술의 라이벌은 무엇일까?

"Video Kill the Radio Star"라는 전설적인 노래가 있다. 그리고 90년대를 풍미했던 이들은 TV와 Video로 인해 이전까지 거의 유일했던 문화였던 Radio와 음악감상실이 붕괴한다며 절망에 빠졌다.

같은 맥락에서 필자는 단언컨대, 영화(관)과 콘서트(장)으로 불리는 대중문화야말로 현재 지역 문화와 전문 인력이 바라봐야 할 라이벌이라 하겠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실시하는 문화향수 실태조사를 보면 이는 극명한 사실로 나타난다. 예년에 비해 소수 점대에서 향상되고 있다고는 하나, 대중음악과 영화로 편중된 향유 비중을 보고 있노라면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라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는다.

영화와 콘서트는 다른 순수예술들과 동일한 선상에 있는 또 하나의 문화향유 콘텐츠이며, 시민들은 한정된 향유 능력과 시간을 소비해서 '재미있고, 공감할 수 있기' 쉬운 것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몸(정신)에 좋은 음식(문화)라고 강요를 할지언정, 선택권을 쥐고 있는 시민들, 심지어 소외계층들마저 그들의 통합 문화 이용권을 위의 대중문화 소비에 사용한다. 그렇다면 현재의 문화·예술은 실패한 것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작품·행사의 완성도는 매우 기본적인 것이므로, 이 밖에 문제점을 찾아보자면 동시대의 흐름과 사람들의 문화적 취향을 이해하고 소통하려는 노력의 부재라는 치명적인 문제에 이르고 만다.

01. 국민들의 문화예술행사 관람률은 어떻게 변화했을까요?
문화예술행사 관람률
02. 분야별 문화예술행사 관람률을 어떻게 변화했을까요?
분야별 관람률

관계자 혼자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시민이 참여해보고 싶은 기획

말의 존재 목적은 바로 의사소통이다. 일방적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말만 하는 이들을 두고 국민들은 '불통', '소통의 부재'라고 절망해왔다. 하지만, 꼭 그 사람들만 '불통'했던 것일까, '소통의 부재'는 지금도 도처에 존재하고 있다. 전국의 언론·관에서 수요자의 의사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다른 지역에서 성공한 축제, 전년도 개최 행사를 고스란히 재생·복사하는 것도 바로 '불통'이다. 민간단체도 마찬가지다. '발표'는 타자와 소통하고 공유하려는 일련의 시도이자 움직임이고, 일방적인 통보나 강연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문화의 민주화'에 편중되었거나 심한 경우 '그들만의 리그'를 대중 대상 행사와 착각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면 '돈 많은 사람이 혼자 하고 싶어서' 개최할 법한 '불통의 행사'는 어떤 경우에 발생하는가. 정말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고민'하지 않는 모든 행사의 말로라고 할 수 있다. 시민들이 기꺼이 자기 주말을 모두 써가면서 참여하고 싶은 콘텐츠는 역설적이게도 '자원의 결핍'과 이로 인한 '고민'에서 태어난다. 거의 대부분 민간에서 '결핍된 자원'은 바로 예산이며, 이를 시민들로부터 충당 받는 행사는 소위 '상업' 또는 '클라우드 펀딩'이라 불린다. 그리고 시민들의 지갑은 결코 풍족하지 않기 때문에 당연히 '재미없는 허비'에 돈을 기부하지 않는다.

연례적으로 '지원'받는 행사들, 안전사고만 없다면 꾸준히 가는 이런 행사들은 시민들의 지원을 받을 필요가 전혀 없기 때문에 고민할 압박도 없으며, 현상 유지만 하게 된다(사실 허비되는 모든 예산은 시민들의 세금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다소 다른 맥락일 수도 있겠으나, (좀비 예술가와 벌거벗은 임금님 – 우리나라 예술 지원정책에 대한 비판)(김정수著, 문화정책 논총 제30집 제1호 2016.1)에서는 세금을 통한 무책임하고 고민 없는 '지원 과잉' 이 이러한 세태를 야기했다며 격렬하게 꼬집는다. 시대의 흐름을 파악하지 못하고 고민하지 않는 지원도 지원이지만, 이를 수탁 받는 민·관 모두 마찬가지이다.

설령 최초에 대성공을 거둔 행사일지언정, 시간은 흐르고 시민들 역시 성숙해 가기 때문에 변화하지 않는 그것은 과거로 퇴적될 수밖에 없다. 시장에서라면 이렇게 '유행에 뒤처진' 것들은 사라져 버리는 것이 정상이지만, 위와 같이 관례적으로 지원하고 개최되는 행사들은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 '좀비'가 되는 것이다.

재단이미지

지역문화전문인력양성은 혜성처럼 나타났는가?

앞서 이야기한 맥락을 이어보자면, 인간이 하는 모든 일은 '사람이 사람들을 위해 그들과 함께 하는 것(whole things for the people, by the people, with the people)'으로 설명할 수 있다. 문화와 예술의 존재 의의를 안내할 때에도 이보다 근본적이고 쉬운 설명이 있을지 모르겠다. 최근 몇 년 사이 본격적으로 진행 되고 있는 '지역 문화 진흥'은 하루아침에 도달한 현상이 아니다. 기존의 하드웨어(시설·공간) 사업을 중심으로 중앙과 지방을 막론하고 엄청난 규모의 예산을 투자한 끝에 '공간의 현상 유지' 로 귀결된 역사가 있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보다 세세하게 말하자면 하드웨어, 콘텐츠 웨어, 휴먼웨어의 3박자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었기는 하나, 1세대 사업에서는 하드웨어를, 그 다음은 콘텐츠 웨어에만 집중했었던데 반해, 비로소 현재에 와서야 이들을 아우르는 휴먼웨어에 집중하고 있다 하겠다.

지역의 휴먼웨어의 중요성과 콘텐츠 웨어, 하드웨어 간 관계를 쉽게 설명하기 위해 필자는 '영화관'과 '공연장' 개념을 빌려온다. 많은 공공기관· 자치단체들이 결정적으로 놓치는 부분이 바로 여기에 있다. 바로 단편적인 계획으로서 공간(하드웨어)만 만들어놓고 어떠한 콘텐츠나 인력도 제대로 공급하지 않는 행태 말이다. 영화관과 공연장은 리모델링을 하지 않는 이상 늘 같은 공간이다. 한데 향유객들은 이곳에 강한 매력을 느끼고 늘 새로운 기분으로 자꾸만 찾아온다. 꾸준히 매력적이고 새로운 콘텐츠가 공급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공급을 위한 인력도 지속적으로 배치·운영이 된다. 콘텐츠의 개발을 위한 투자는 말할 것도 없다.

지역 자생형 구조와 위 공간을 비교해보면, 첫째 전국 어디에서나 볼만한 콘텐츠(영화, 콘서트)가 가끔 찾아올 뿐 지속적으로 새로운 콘텐츠 공급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지역에 필요한 맞춤형 콘텐츠와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제공할 전문 인력도 없으며, 심지어 공간조차 매력적이지 못한 까닭에 수요자들은 문화향유를 위해 지역을 떠나게 되는 총체적 난국인 셈이다.

한 술 더 떠서 전국 단위 가수 콘서트(콘텐츠) 등은 해당 공간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못하므로 (해당 지역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수억을 들인 축제라 한들 연예인이나 가수를 찾아 물밀 듯이 찾아왔다 돌아가는 시민들은 그들의 이름은 기억해도 축제의 이름이나, 핵심 콘텐츠는 기억하지 않는다.

지역 문화 전문 인력 양성이 갖는 의의와 지역에서 가져야 할 마음가짐은 단 두 가지다. 하나는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고, 지역에 있으되 전국과 경쟁할 것'. 그리고 나머지는 '익숙하면서도 항상 새로울 것'이다. 이것이 바로 지역과 사람이 답이라는 현재진행형 정책 사업의 기본 전재이며, 지역 혁신의 열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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