톡톡칼럼

울산광역시 지역문화진흥 시행계획과 울산문화재단의 역할

홍영진 경상일보 문화부장

문화도시는 쉽게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예전보다 나아졌다고 하지만 생활여건이나 눈높이가 달라지면서 시민들 수준도 달라졌기 때문이다. 문화도시라는 거대 지향점에 이르기 위해서는 큰 틀에서 긴 호흡으로 묵묵히 걸어가는 것이 정답일 것이다.

아무리 그렇다하더라도 거시적인 안목 만 으로 이 문제를 대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한 걸음씩 내디딜 때마다 옆길로 새지 않도록 짧은 보폭의 실행 계획이 필요하다. 사람들이 원하는 점을 그 때 그 때 빠르게 충족시켜 또다시 전진 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동력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5년 주기로 새롭게 수립되는 ‘울산광역시 지역문화진흥 시행계획’은 그래서 매우 중요하다. 울산시는 제1차(2014년~2019년)에 적용된 시행계획을 시기적으로 마무리했고 이제는 그 뒤를 이어 갈 제2차(2020년~2024년) 시행계획을 세우고 있다. 큰 틀은 다듬어졌고, 현재는 마무리 세부사안을 점검하는 단계라고 할 수 있다.

아직 최종안이 도출되지는 않았지만 관련 용역 착수보고회와 중간보고회를 종합할 때 ‘사람과 문화’ 그리고 ‘예술과 일상’을 잇겠다는 지향점은 분명한 듯 보인다. 하지만 궁극적인 목표와 취지만으로는 도대체 어떤 사업이 우리 도시에서 새롭게 펼쳐질 지 가늠하기 어렵다. 좀 더 세부적인 항목을 살펴봐야 하는데, 최근 열린 시민토론회(6월16일, 울산시의회 대강당)의 배부자료에서 이번 시행계획을 얼개를 짐작할 수 있다.

‘전략별 세부 사업계획’은 ‘일상에서 누리는 문화예술’ ‘건강한 문화예술 생태계 조성’ ‘문화예술의 사회적 확산’ ‘참여와 교류를 통한 문화혁신’ 4가지로 구성된다.  구체안으로는 △통합플랫폼 울산시민문화예술학교(울산형 커리큘럼 개발 및 시민참여확대) △우리동네 문화살림(문화예술에 방점을 둔 마을공동체사업 지원) △울산시민문화의집 20개소 개소(소규모 유휴공간의 문화예술적 활용) △울산문화가로수(도심 속 거리예술특화공간 조성) △태화강의 여름(시민참여형 축제기획 및 실행) △울산예술인의집(문화재단·예총·민예총 등 주요문예단체 입주) △울산문화실험실(가변형 무대와 다원형 전시 등 실험적 문화공간) △문화기획자아카데미 △울산아트스튜디오(예술장르별 마스터클래스) △울산명인명장 라키비움(무형문화재전수관·공방·공연전시장·판매장·교육시설) △울산문화예술공장(폐산업공간 문화재생공간) △울산산업문화원탁회의(산업·기술·노동·문화 연계한 위원회 설립과 기금조성) △울산넥스트웨이브(청년문화예술인 활동교류지원) △메가로폴리스 울산(부울경·해오름 문화연대) △인터시티프로젝트(국제문화교류) △울산지역문화진흥협의회(광역·기초문화재단 상설협의회) △울산문화예술회관 재단법인화 정도로 요약된다.

적지 않은 시행계획이 나열됐지만 이를 관통하는 큰 흐름을 딱 하나만 꼽으라면 단연 ‘생활문화’라고 할 수 있다. ‘지역문화진흥법’에서 생활문화는 ‘지역의 주민이 문화적 욕구 충족을 위하여 자발적이거나 일상적으로 참여하여 행하는 유·무형의 문화적 활동’으로 정의한다. 이에 더해 새로 제정된 ‘문화기본법’에서 시민들이 문화예술의 소비자나 향유자를 넘어 창조적 문화예술활동의 주체임을 확인하고 시민들의 능동적인 활동을 지원하도록 강조한 것과도 부합한다.

문제는 시행계획 안에 제시된 거의 모든 세부 사업마다 울산문화재단이 예외 없이 운영 주체로 참여해야 한다는 점이다. 재단은 지역문화진흥에 관한 중요 시책을 지원하고 사업을 수행하여 시민의 문화예술 향유 욕구에 부응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를 위해 울산시가 출연해 만든 기관이니, 어찌보면 울산시의 지역문화진흥 시행계획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 당연하다 할 수 있다.

다만 이 모든 사업들이 과연 30명 안팎의, 그것도 본연의 업무가 이미 포화 상태인 울산문화재단 조직이 나서서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 지 의문이 든다는 것이다. 이번 시행계획이 지역문화진흥을 위해 5년을 시한으로 제시되는 내용임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추진하는 사업이라면 그나마 가능도 하겠지만, 엄청난 규모의 예산 확보가 필요한 공간 및 기반조성 사업들이 적지 않다. 이 모든 사업을 과연 5년 안에 어떻게 해결 할 지 우려스러운 마음을 떨치기 힘들다.

다행히 구체안에 제시된 몇몇 사업은 출범 4년 차의 울산문화재단이 그 동안 운영해 온 사업과 무관치 않다. 기존의 사업에서 한걸음 아니 반걸음만 더 전진하면 기대 이상의 결과를 얻을 수도 있겠다.

다만 거듭 강조하지만 조직이나 체제의 전환을 요구하거나 전에 없던 새로운 문화시설을 만드는 부분에서는 울산시와 용역업체와의 사전 협의 과정을 좀더 자주, 깊이 있게 거쳐야 한다. 그래야 선택과 집중을 할 수 있고 단기 혹은 장기 과제를 선별하는 작업이 가능하다. 이를 따르지 않은 채 울산시의 독자 노선으로 시행안을 확정지을 경우에는 예기치 못한 상황에 봉착할 수도 있다. 계획만 번듯하고 성과는 저조하다는 5년 뒤 비판으로부터 벗어나기 힘들기에 하는 말이다.

‘지역과 일상에서 문화를 누리는 생활문화시대’는 현 정부의 국정과제이기도 하다. 도서관·박물관·미술관마다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생활문화동호회를 구성해 활동을 펼치도록 유도한다. 전국단위 생활문화센터는 올 한해 161개소가 추가로 조성해 전체 352곳으로 확장된다. 울산지역에서도 현재 중구, 북구, 울주에 6곳이 운영되고 있는데 앞으로는 더 늘어날 것이다.

요즘은 일반 시민이 문화예술을 보고 듣는데 만족하지 않는다. 본인이 직접 나서 공연하고 전시하고 축제까지 기획하려한다. 전문 예술가들의 공연전시를 관람할 때도 종종 전문가에 버금가는 수준의 비평을 쏟아낸다. 우리 주변에는 이처럼 특정 분야 예술에 깊이 심취하면서 오랜 시간 안목을 키워 온 시민들이 꽤 많다.

이번 시행계획은 이제 겨우 시냇물을 형성한 도시문화 흐름을 거센 강물로 바꾸는데 전환점이 돼 주어야 한다. 타이밍과 그에 맞는 섬세한 전략은 상상하지 못했던 에너지를 안겨 준다. 향후 5년을 쉬지 않고 달리게 할 것이고, 관성의 법칙에 따라 또다시 10년을 쉼 없이 달리도록 해 줄 것이다.

그렇게 쉼없이 뚜벅뚜벅 걸어가야 신기루와 같은 문화도시도 실현될 수 있다.

*본 칼럼은 울사시의 ‘제2차 울산광역시 지역문화진흥 시행계획’ 최종보고서가 나오기 전 작성된 글임을 밝힙니다.

  • 필자소개

    울산지역 문화예술현장을 취재하며 15년 간 ‘문화부기자’로 일해 왔다. <울산에도 문화재단 설립하자>(2008), <울산원도심을 문화1번지로>(2010), <울산주도 국가브랜드 이제는 산업관광>(2012), <2020국립산업기술박물관 국제도시울산 글로벌 랜드마크>(2014), <울산, 세계문화유산도시로 가는 길>(2016), <한눈에 보는 MAP OF ULSAN 컬처&히스토리>(2018), <홍영진의 행복한 미술관>(2018~2020) 등 해마다 지역문화이슈를 선점해 정책대안 제시를 위한 기획물을 연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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