톡톡칼럼

울산 그 도시의 새로운 활력을 위하여

전고필 향토사전문책방 이목구심서 대표

울산을 떠올리면 나는 가장 먼저 산업 역군들이 상기된다. 포항과 더불어 울산은 조국 근대화의 기수들이 한반도의 새로운 역사를 창조한 전무후무한 세상을 일구었던 땅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오늘날 한국사회를 구성하는 가장 큰 중심에 울산은 존재했다. 그런 반면 잃어버린 것들도 많았다. 그 첫 번째가 지역 정체성이라는 것을 들 수 있다. 산과 강과 들과 바다가 인간과 조응하며 만들어낸 역사와 문화가 고스란히 침잠되고 말았던 것이다. 그리고 들려오는 것은 황폐화된 땅이나 강에 관한 이야기들로 도시는 회색빛으로 갈아입고 말았었다. 살기위해 전국에서는 많은 이들이 고향을 떠나 이곳에 터전을 잡고 생활했다. 사는 것이 그다지 여유롭지 못한 시절 울산은 희망의 도시였고, 그만큼 삶의 의욕을 충족해 주는 도시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왔다. 1차 농경사회의 주역이 되어야 할 이들은 정든 고향과 부모형제를 두고 이곳에서 새로운 이주의 역사를 시작했다. 단순한 뜨내기가 아니라 울산에 뼈와 살을 묻으며 결혼도 하고 일가를 이루며 살아왔다. 그들에게는 집과 직장 그리고 사무치는 향수를 달래는 향우회 같은 것 빼고는 여유로움이라고는 찾을 수 없었던 아픔의 시절이었다. 그리고 서서히 달라지기 시작했다. 경제적인 윤택함이 찾아오고 사회적인 지위 또한 이전과는 달라졌다. 하지만 생활은 크게 변한게 없었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은 일터와 삶터 사이를 지구의 자전처럼 그렇게 도는 것뿐이었다. 그 사이 산업의 1세대들은 늙어가고 도시도 몰라보게 변화가 찾아 들었다. 마천루가 솟아나고 죽었다던 태화강도 되살려 내고 10리 대숲은 국가정원이 되었다. 공업단지의 야경으로만 브랜딩 되었던 도시가 생태와 공존하는 도시로 서서히 탈바꿈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고민이 해결된 것은 아니다. 가장 먼저 공업도시로 출발한 만큼 울산이 풀어내야 할 숙제가 있다.

바로 인간 존엄에 관한 문제다. 인간의 노동력으로만 점철되던 산업시대의 뒷단은 기계화와 자동화로 바뀌면서 공장에서의 인력에 대한 요구도 점점 희소해져가고, 기술력도 과거의 손기술에 의지하던 방식이 컴퓨터와 인공지능 로봇 등으로 대체 되어가고 있다. 급변하는 4차 산업사회로의 전환 그 중심에 울산이 존재하는 것이다. 자칫 인간 소외로 이어질지 모르는 환경을 모두는 두려워하고 있다. 특히나 제조업 중심의 울산이 감당해야 할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은 것이다. 기술 부분에서의 놀라운 성취를 이룩한 원동력은 인간의 지혜와 창조력이 기반이었다. 이제 울산은 그 혜안을 토대로 미래에 대한 희망을 설계해야 하는 것이다. 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노둣돌은 바로 문화의 힘에 있다. 이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하고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반구대 암각화가 가지고 있는 신성성과 공동체성, 미학적 가치와 생산성, 지리적 특성, 역사성 등은 울산이 가지고 있는 현재의 정체성과도 일맥상통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처용이라는 사라센인을 맞아주고 역신을 물리쳐간 출발지점도 바로 이곳 울산이니 말이다. 선주민과 이주민 사이에 큰 간극을 두지 않고 오로지 공업화와 현대화에 매진했던 도시 정체성의 근원에는, 이국의 문물을 수용하고 자국의 문명을 수출했던 곳이었던 개운포의 채취가 아직 여전한 것이다. 역사적인 연원에서 보듯이 울산의 문화력은 그 여느 도시보다 빼어난 곳이었다. 하지만 공업화와 현대화는 농경과 어업의 사회를 되돌아 볼 여유를 갖지 못했다. 결국 그 내부에서 일하는 노동인력 또한 문화가 있는 삶과는 유리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점진적으로 가처분 소득이 향상되고, 잉여의 시간이 생겨나기 시작하면서 그 여분의 시간에 대한 고민이 비로소 생성되었다. 그런데 또 뜻밖의 문제가 있었다. 문화를 바라보는 시각이 모두들 고전적인 장르예술로 국한하여 바라본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에서도 90년대 이후 일상의 문화화라는 것을 강조하며 문화국가로의 진입을 주도해 왔다. 90년대 중반부터 들어선 전국의 문화의집이 그 대표적인 사례였다. 울산에도 농소2동이나 3동에 들어선 문화의집이 있다. 생활권 속에서 문화의 향유뿐만 아니라 참여 및 생산활동을 전개할 수 있도록 문화부와 지자체가 주도하여 설립한 것이다. 또한 각 구단위별로 문화센터나 문화회관이 들어서도, 각 동사무소에는 주민자치센터에서 운영하는 다양한 문화프로그램이 상황리에 운영되고 있다. 거기에 지역문화를 발굴하고 전승해온 지방문화원도 터줏대감처럼 존재한다. 또한 2014년 제정된 지역문화진흥법은 지역이 다르다고 문화적 차별을 받지 않도록 법제도적인 측면에서 다양한 문화활동을 촉진하고 있다. 광역문화재단이나 기초문화재단이 그 매개자가 되어 역할을 수행하도록 뒷받침하고 있다. 이런 지역문화진흥법에는 문화도시의 지정에 관한 규정도 있다. 그간의 행정주도의 문화정책이 아닌 시민들이 창안하고 실천하는 시민주도의 문화정책과 프로그램을 통해 문화적 삶이 일상화 되는 도시를 30여개 지정하여 지원하겠다는 전략이다. 사뭇 달라진 문화정책들에 많은 국민과 지자체는 열광을 하고 있다. 행정의 의자에서 짜여진 문화정책이 아닌 실생활에서 요구되는 문화정책이 곳곳에서 수렴되고 진행되는 이런 현상이 결코 다른 동네만의 일이 아니어야 한다.

사실 울산은 1962년부터 우리나라 최초의 공업단지로서의 역할을 묵묵히 수행해왔다. 그 이면에는 산업근로자의 개별적 삶은 존중받지 못한 척박한 환경이 뒷 따랐다. 열악한 근로환경과 더불어 문화에 대한 접근성도 보장받지 못했다. 오히려 문화는 사치스러운 것이었을 터였다. 이제 피와 땀으로 얼룩진 근로자들의 정년은 이미 시작되었고, 사회는 후기 산업사회로의 이행으로 치닫고 있다. 이런 울산현실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울산문화재단과 주고받으며 가장 먼저는 숙련노동세대들의 자아찾기가 선행되어야 함에 모두 공감했다. 나를 버리고 오직 국가와 가족을 위해 인생을 보내야 했던 그 세대들에게 드릴 수 있는 특단의 대책이 문화를 통해 발현되는 것에 동의한 것이다. 되돌이표의 생활에 종지부를 찍은 분들에게 문화활동이라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접하며 생애의 전환점을 마련해 드리는 것이 가장 선행되어야 할 지점인 것이다. 논의의 테이블에서 문학 평론가 고영직 선생은 “하마터면학교” 라는 것을 만들어 보자 제안한다. 내 인생에서 놓쳐버렸던 것,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것들을 찾아 내 삶에서 이것을 선택했더라면 이랬을 것인데 라고 할 만한 것들을 찾아내는 학교 후 학교, 일자리 후 학교를 제공하자고 하는 방안이었다. 이처럼 그것이 무엇이던 삶의 자존감을 높이고, 울산에서의 생애에 대한 깊은 애정과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 대한 대응 방식으로 문화를 전면부에 놓는 것은 매우 유의미한 일이다. 보다 풍요롭고 알찬 생애는 내가 가진 삶의 기술을 온전히 자기만의 것으로 소유하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함께하는 마당에서 드러내고 공감하며, 공유하는 방법으로 또 다른 활력을 부여하는 생애기술의 전환 공간 같은 경우도 문화활동의 범주에서는 가능하다. 대한민국을 경제대국으로 만들었던 울산의 저력을 공업단지의 울타리 안에만 두는 것이 아니라 그 밖으로 나와 시민과의 접점을 형성할 때 울산의 문화력은 더욱 확장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울산시나 재단이 서둘러야 할 일은 산업역군들의 삶에 대한 인류학적 시각으로 아카이빙이 선결되었으면 하며, 이에 근거해서 사회적 분석을 통해 제2의 생애, 제2의 전환점이 어떻게 울산과 조응하며 시민주체의 창조력으로 부각되고 용해 될 것인지 함께 찾아내는 것이다. 문화재단을 위시로 하여 지역문화단체와 문화원과 문화센터, 문화의집, 생활문화센터 등은 지속적인 연계 네트워크를 가지며 이에 부응한 유연하고 능동적인 프로그램을 시민들과 함께 찾으며 각종 지원사업과 현장 프로그램을 운영함으로서 산업전사들의 창조력이 문화활동에서 더욱 빛날 수 있는 비빌언덕이 되어주는 것이다. 산업사회의 첫삽을 들어올린 울산이 후기 산업사회의 새로운 모델로 산업과 문화의 융합을 통해 문화도시로 돋음해야 할 비전에 국민 모두는 응원할 것이다.

  • 필자소개

    내 나라가 궁금해서 관광학을 전공하고, 여행업을 하다 문화의집을 비롯해 문화재단 등에서 문화와 관광의 접점을 만드는 일에 매진했다. 지금은 전라도 담양에서 향토사를 취급하는 이목구심서라는 책방을 운영하고 있는 돈 안되는 일에 더 열심인 문화기획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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