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꿈이 합(合)이 되는 날까지

다감이 정세련

다감이 정세련

여의주

신진예술가 여의주(33세) 씨를 만나러 가는 길. 딱히 초록 잎에서 듣는 푸른 물이 아니더라도 싱싱한 향기가 난다. ‘신진’이라는 낱말이 주는 이미지 덕분이다. 도약, 시도 등의 활동적인 느낌에서 풋풋함이 전해진다.

여의주. 이름에서 풍기는 신비로움이 예사롭지 않다. 용의 턱 밑에 있는 구슬로 사람이 이를 얻으면 무슨 일 이든 할 수 있다는 전설의 물건이 여의주다. 예명인지를 먼저 물었다. 가녀린 몸매의 무용수 이름으로는 너무 큰 듯해서다. 본명이란다. 개명한 적도 없는 이름이라는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용의 승천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물건이 여의주인 만큼 무용수에게는 이보다 걸맞은 이름도 드문 듯하다.

작명과 동시에 정해진 운명이었을까. 여의주 씨는 무용을 시작한 것부터 대부분의 무용수들과는 다르다.

여의주

“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 무용을 접했어요.
친구 따라 무용학원을 간 적이 있었는데 한국무용학원이었어요.”


그때 본 원생들의 춤사위는 매혹적이었다. 보고만 있어도 어깨춤이 절로 났다. 어떤 동작도 한 번만 하면 다 익힐 수 있을 것 같았다. 결국 부모를 졸라서 한국무용을 시작한 것이 춤의 세계로 들어서게 된 계기다. 부모의 권유로 시작한 많은 무용수들과는 시작부터 다르다. 이름이 운명을 바꾼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시작과 달리 여의주 씨는 현재 현대무용을 하고 있다. 고전무용에서 현대무용으로 전과를 한 것은 울산여자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그때까지 한국무용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울산이 현대무용의 불모지였던 까닭이다. 무용을 시작하는 이들이 현대무용부터 배우기에 울산은 무용 환경이 너무 열악하다. 이런 점이 대부분의 무용수들을 한국무용부터 접하게 한다. 여의주 씨는 이런 환경까지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시작을 한국무용으로 했기에 현대무용과의 합(合)을 꿈꾸게 되었기 때문이다.

“대구 시립무용단원으로 활동했던 적이 있어요.”

꼬박꼬박 월급이 나오는 일이 무엇보다도 좋았다. 생활이 안정되니 춤만 추면 될 것 같아서였다. 그렇지만 어딘가에 소속이 되어서 움직인다는 것이 즐거운 일만은 아니었다. 생활의 안정을 얻는 대신 자신만의 춤 세계를 추구하려는 꿈은 접어야 했다. 뿐만이 아니었다. 몸을 쓰는 일이다 보니 부상도 문제였다. 체력 저하로 스스로의 성장이 주춤거렸던 적도 있었다. 멋지게만 보였던 나비 같은 몸짓이 숱한 땀과 부상의 결과물이라는 사실이 고통스러웠다. 무용을 선택한 것이 과연 잘한 일인가, 이 일을 끝까지 해낼 수 있을까. 이어지는 고민으로 슬럼프도 겪었다. 이런 갈등이 시립무용단의 탈퇴를 감행하는 용단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소속을 벗어난다는 일이 편할 수는 없었다. 각오한 바였지만 사막을 여행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당장 생계를 위한 일이 필요했다. 더 나은 춤의 세계를 구축하기 위한 수단으로 무용 강사의 길을 택했다. 무용 전공을 꿈꾸는 미래의 춤꾼들이 모여드는 입시학원의 강사로 일을 시작했다. 거기서 만난 이가 ‘합(합)’ 공연을 함께 기획하게 된 남편 이필승(33세) 씨다. 무용이 전공인 것부터 호감을 갖게 한 데다 춤에 대한 생각에서도 동갑내기 이필승 씨와는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다.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을 한 직장에서 만나다 보니 허물없이 속을 털어놓는 사이가 되었다. 이런 과정은 자신들도 감지하지 못한 7년의 연애기간이 되었다. 작년에 결혼한 이후 이필승 씨와는 주말부부로 지내고 있다. 이필승 씨가 모던테이블(Modern Table) 소속의 수석 무용수인 까닭이다. 모던테이블은 해외 무대에서도 인정받은 레퍼토리 무용단이다. 현재 서울에서 활동하며 전국을 무대로 ‘다크니스 품바’ 공연을 성공적으로 이끌고 있다.

여의주 씨도 작년 여름 다크니스 품바 공연에서 전율을 느꼈다. 자신이 추구하던 춤의 세계의 정답을 얻은 기분이었다. 예쁜 몸짓과 몸매가 돋보여서 좋아했던 무용이 얼마나 헛된 망상이었는지를 반성하는 계기도 되었다. 관객의 시선을 끄는 장치들, 객석에서 함께 뛰는 무용수들에 함께 반응하는 관객들, 음악, 하모니카, 젓가락 등의 소품들은 모두 ‘품바’라는 낡고 허기진 이미지와 달랐다. 말끔한 차림의 무용수가 몸으로 표현하는 품바는 신선한 반전이었다. 그날의 강렬한 충격이 남편과 함께 ‘합’을 기획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였다. ‘합(합)’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물었다.

여의주

“여러 의미가 담겨 있어요. 관객과 무용수가 이루는 호흡의 일치, 고전무용과 현대무용의 어울림, 동서와 남녀 간의 친밀감, 서울과 울산이라는 서로 다른 지역의 동질감 찾기, 조명과 디자인의 일치에 이르기까지 어울리지 않을 대상들이 하나가 되는 의미를 담는 공연이 될 거예요.”

남편은 서울에서 여의주 씨는 울산에서 각자의 역할 연습에 열심이다. 함께 할 학생들의 연습지도에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 예술은 늘 새로움을 추구해야 한다. 지금까지 보아 왔던 춤의 세계와 다른 몸짓으로 세상을 만나는 것이 여의주 씨의 바람이다. 그 새로움이 자신에게서 끝나서는 안 된다는 생각도 갖고 있다. 후진들이 이어가야 한다. 이것이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에도 열정을 잃지 않는 이유다. 강사 생활 4~5년쯤 되었을 때 춤 연습 시간이 부족해서 겪었던 슬럼프를 견디게 해준 것은 제자들이었다. 원하는 대학에 간 학생들이 무용수로 보람을 느끼는 것을 보면서 스스로의 생활도 활력을 찾게 되었다.

“앞으로도 힘들 거예요. 그렇지만 신진예술가잖아요? 부딪히면서 배우고 실패를 발판 삼아 새로운 무용 세계를 구축해야죠.”

신진예술가 지원 사업을 신청할 때 공연보다는 역량 강화 쪽에 더 비중을 두는 것이 좋겠다는 조언도 야무지다. 이제 여의주 씨는 또 다른 합을 꿈꾸고 있다. 오직 춤이 좋아서 무용수가 된 제자들이 졸업 후 호구지책에 대한 갈등 없이 무대에 설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즉, 무용과 생활이 하나로 이어지는 일이다. 그 밑바탕에 자신이 있음을 제자들이 믿어주길 여의주 씨는 바란다. 현재는 비록 힘들지만 제자들이 설자리를 마련해주는 주춧돌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예술가의 꿈을 포기 못하는 이유다. 물론 남편이 있어서 가능한 일이다. 누구보다도 든든한 버팀목인 남편과 함께 무대에 선다는 생각은 연애처럼 가슴을 뜨겁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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