톡톡칼럼

실버세대를 위한 문화예술교육

안석희 (문화예술교육가협동조합 마을온예술 이사)

노년 시기에 대한 사회의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 베이비 붐 세대의 은퇴와 맞물려 노년을 맞는 인구가 크게 늘어난 탓이다. 삶의 질에 대한 관심이 예전보다 높아진 것도 영향이 있을 것이다. 노년기는 일자리에서 벗어나면서 직업에 대한 성취감과 긴장감이 낮아지고 자녀들이 독립하여 양육의 부담에서 벗어나 비로소 자기 자신을 돌아볼 여유를 갖게 된다. 이 여유를 바탕으로 펼쳐질 성숙한 노년의 삶에 대한 기대가 있는 반면, 경제적 어려움이나 관계에서 고립될 것에 대한 두려움도 있다. 사회적 활동이 줄어들고 체력과 운동, 감각 기능이 저하되는 이 시기에는 건강을 돌보고 신체 노화를 긍정적으로 수용하며 자기 자신의 삶을 통합해야하는 과제를 가지고 있다. 개인의 대응뿐만 아니라 사회의 준비도 필요하다. 급격한 저출산 고령화 사회를 맞아 노년층의 이해와 요구를 반영한 다양한 정책들을 마련되고 있는 데, 그 중 하나가 여가활동을 위한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이다. 유아부터 노년까지 세대를 아우르는 생애주기별 문화예술교육은 지난 2018년 문화체육관광부가 마련한 첫 법정계획인 ‘문화예술교육 5개년 종합계획(2018-2022)’을 통해 구체화되었다. 누구나 쉽게 문화예술을 접할 수 있도록 지역과 수요자를 중심으로 재편된 것이 특징이다. 울산에서도 그간 유아를 위한 창의놀이 프로그램, 아동 및 청소년을 위한 꿈다락 토요문화학교, 청년을 위한 문화예술교육사 인턴십, 중장년을 위한 지역 특성화 문화예술과 더불어 올 해 처음으로 노년층을 위한 실버세대 문화예술교육 지원을 시작했다. 대규모 은퇴가 예상되고 있는 울산의 상황을 볼 때 늦은 감이 있지만 이러한 지원을 통해서 지역에 적합한 프로그램이 개발되고 안착될 것을 기대한다. 실버세대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은 무엇보다 노년층이라는 참여자들에 대한 깊은 이해와 지역 특성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노년층은 앞서 말한 것처럼 직업과 자녀양육의 부담에서 벗어났지만 이 시간을 어떻게 활용할지 미처 계획을 세우지 못한 경우가 많다. 지난 삶의 경험의 틀에 묶여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할 수도 있다. 특히, 대규모 사업장이 중심이 된 울산의 직업구조상 남성들은 익숙해진 집단주의 경험과 가부장적인 태도로 은퇴 이후 새로운 관계를 맺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반면, 여성은 자녀육아와 가족이라는 틀에서 벗어나서 더욱 자유롭고 활발하게 사회적 관계망을 확장시킬 수 있다. 성별에 따른 이런 불균형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도 관심사다. 배우자 사별, 자녀의 독립으로 인한 1인 노년가구의 급증 문제도 있다. 다른 이들과 적절한 관계망을 만들어갈 수 있는 실버세대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이 요청된다. 도시와 농어촌지역이 섞여있는 울산의 환경에 맞는 기획도 필요하다. 지역 환경과 주거 형태에 따라 프로그램의 모양은 많이 달라진다.

여기에서 올 해 처음 시작한 울산 실버세대 문화예술교육의 프로그램들을 살펴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미디어와 예술장르의 통합교육을 지향하는 ‘미디어트’의 <사진으로 쓰는 편지 ‘그 때 그리고 순간’>은 사진과 글을 엮어 만드는 포토 에세이 형식이다. 참여자들이 살아온 삶의 기억을 바탕으로 이야기와 사진을 모아 출판물로 만든다. 남구의 선암호수노인복지관에서 진행되는 데 무엇보다 접근이 쉽고 좋은 자연 환경을 가지고 있어 참여자들의 관심을 끌 것 같다. 사진과 에세이라는 익숙한 매체를 활용한 이번 프로그램이 울산의 대표적인 실버 프로그램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어떤 특성을 잡아서 살려야 할지 고민과 새로운 시도를 더하면 좋겠다. 북구예술창작소의 <인생의 봄날은 그대와 함께>는 목공과 캘리그래피, 보타니컬 아트 등 다양한 미술 장르를 통합한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북구예술창작소가 위치한 염포동의 어르신들이 다양한 미술 경험을 통해 어떤 결과를 만들어낼지 관심이 크다. 염포동 중리마을 경로당과 성원상떼빌 경로당의 분들을 중심으로 진행될 예정이라 하는데 독특한 주거지역의 실버프로그램으로 만들어 가면 좋겠다. 남구문화원이 기획한 <장생포 할매들의 부루마블 제작기2>는 제목이 말해주듯이 장생포의 여성노년층들과 함께 게임 제작이라는 독특한 장르에 도전한다. 보드게임을 만들며 지역에 대한 지식과 애정을 되살리고 각자 간직한 인생의 기억을 자원 삼아 새로운 게임을 창조하는 프로그램이라는 점이 돋보인다. 이미 한 번 진행한 경험을 살려 바다와 항구라는 울산의 또 다른 측면이 잘 드러나는 프로그램이 되길 바란다. 울산국악실내악단 소리샘이 진행한 <너락樂!, 나락樂 우리樂!>은 노년층에게 친밀한 국악을 매개로 한 프로그램이다. 1기는 우리음악 발성과 단가 등 노래가 중심이고, 2기는 가야금과 국악기 체험과 실습이 중심이다. 기능전수식의 단순 강좌 프로그램을 넘어서 국악이라는 친근한 매체를 통해 참여자들의 살아온 삶의 이야기가 풍성하게 풀어져 나오는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을 기대해본다. 통합문화예술교육 바로의 <꽃밭에서>는 울주군 두서면의 울주생활문화센터에서 열린다. 참여자들이 살아온 이야기를 바탕으로 놀이, 글쓰기, 미술, 공예활동 등 5가지의 다채로운 활동을 통해 지금까지 살아오는 일에 집중하느라 뒷전에 밀쳐둔 ’나‘를 새롭게 바라보고 이 이야기들을 책으로 엮어내는 프로그램이다. 사전조사에 따르면 두서면은 고령화가 급격하게 진행되는 곳으로 사별 등으로 인한 1인 노년가구의 비중이 높아, 외로움과 만성질환으로 우울감을 느끼는 사례가 많았다고 한다. 도농 복합지역인 울주군의 두서면이라는 지역의 분들에게 적합한 프로그램이 되었기를 기대해본다.

울산의 실버세대 프로그램들이 실행 지역의 특성을 잘 반영하고 참여자 한 사람 한 사람의 반응을 살피며 수정된다면 마칠 쯤 더욱 좋은 프로그램으로 바뀌어 있을 것이다. 다른 지역과 외부 사례들을 참고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칠곡 가시나’들이나 ‘시인 할매’와 같은 다큐멘터리 영화의 예도 있고 꽤 많은 실버 프로그램의 성과들이 축적되어 있다. 이 중 적절한 사례들을 폭넓게 제시하고 적시에 필요한 재원을 투입하는 건 문화재단의 몫이다. 이 프로그램들이 널리, 또 정확히 알려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물론이다. 울산의 실버 문화예술교육프로그램이 노년층들의 늘어난 여가시간을 채워주는 데서 그치지 말고, 지나온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지금 여기의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내는, 의미 있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이렇게 개인의 자각을 바탕으로 새로운 관계를 맺어 나갈 때 노년층은 더 이상 해결해야하는 지역문제가 아니라 울산의 소중한 자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실버세대 문화예술교육을 통해 울산의 노년을 맞는 개개인의 행복한 삶과 지역의 활력이 새롭게 만들어지길 기대한다.

  • 필자소개

    문화예술교육가협동조합 마을온예술의 이사이자 서울 동북4구 도시재생협력지원센터장으로 일하고 있다. 문화기획을 통한 사회의 활력화에 관심이 있고 사람과 자원을 연결하여 의미 있고 재미난 일을 쉽고 편하게 하는 걸 꿈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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