톡톡칼럼

과식해도 좋아, 이런 음악의 성찬이라면!

이진욱 UBC 울산방송 PD

직업이 음악프로그램 PD이다보니 새로운 음악이 없는지 항상 두리번거린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유일한 취미 역시 음악감상 및 음반수집인지라 책상 위에는 늘 새롭게 지른 LP와 CD들이 탑을 쌓으며 늘어만 간다. 그렇게 새로운 음악들을 모니터하면서 느낀 중요한 사실은 최근 몇 년간 우리나라 뮤지션들의 음악적 완성도가 최상에 이르렀다는 점이다. 예전에는 해외 뮤지션들과 비교해서 ‘못지않게 잘 한다’ 정도가 최고의 칭찬이었다면 요즘의 대한민국 뮤지션들은 외국뮤지션들을 압도한다. 누구나 다 아는 BTS나 블랙핑크 등 K-POP 스타들의 얘기가 아니다. 인디 록밴드, 포크 싱어송라이터, 국악 퓨전 밴드, 그리고 재즈 크로스오버 뮤지션 등 전방위에 걸쳐 자신만의 개성과 치열한 연주력으로 놀라운 성과물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 내 나름대로 열심히 신보들을 사들이고 스트리밍을 돌리고 있지만, 모르고 지나치는 국내 뮤지션들이 얼마나 많을지 안타까운 요즘이다.

이럴 때 정말 필요한 게 있다. 무대에선 뮤지션들의 공연이 펼쳐지고 바로 옆에는 그 뮤지션의 음반과 머천다이즈들이 전시 판매되며, 맞은편에선 음악관계자들이 토론하고 비즈니스가 이뤄지는 그런 현장이 필요하다. 홍수처럼 쏟아지는 음악들 중 별미들만 선별해 숟가락으로 떠먹여 주는 국제 뮤직포럼이 그 예다. 미국의 텍사스주 오스틴에서 열리는 사우스바이사우스웨스트(South by Southwest, SXSW)페스티벌이나 프랑스의 미뎀(Midem), 싱가포르의 뮤직 매터스(Music Matters) 등 외국의 국제적인 뮤직 플랫폼에 가 보는 것이 한때의 로망이었다면 지금은 굳이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이미 글로벌 수준의, 아시아 굴지의, 국내 최대의 뮤직포럼이 다른 곳이 아닌 우리 울산에서 10년 가까이 펼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외국의 관계자들도 참여하길 갈망하는 국제 뮤직포럼은 바로 울산의 ‘에이팜’이다. 오랜 시간 지켜본 에이팜은 이래도 되는 건가 싶을 정도로 과분하기까지 한 성찬이다. 실력 있는 뮤지션들의 공연이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펼쳐지는데다 전 세계 유명 음악산업 관계자 간 실질적인 비즈니스 현장이 이곳에서 열린다. 그리하여 시민들과 관광객들이 여유 있게 공연을 즐기는 건 물론이고 우리의 실력 있는 뮤지션들이 전 세계 음악관계자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알리는 최상의 기회가 되고 있다. 울산에서 열리는 이 에이팜이 산업도시의 척박한 이미지를 바꾸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왔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우리 스스로 우리의 에이팜을 좀 더 자랑스러워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성공적인 에이팜에 애정을 담아 몇 가지 아이디어를 덧붙여본다. 첫 번째는 에이팜에 레코드페어를 결합하는 것이다. 요즘의 음악 마니아들은 더이상 파일이나 스트리밍을 선호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라진 매체로 취급받던 LP나 카세트테이프가 경쟁하듯 발매되고 있고 음악을 소장하는 것이 가장 힙한 유행으로 번지고 있다. 2019년 미국에서 LP가 1,884만 장이나 팔렸고 국내에서도 60만 장 이상 팔린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이런 추세에 발맞춰 매년 서울에서는 대규모 레코드페어가 열리고 있고 수많은 이들이 방문하는 호황을 누리고 있다. 에이팜도 레코드페어와 결합하여 음반을 사고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만들면 큰 시너지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울산 에이팜 레코드페어에서만 구매할 수 있는 한정반을 공개한다면 더욱 효과가 있지 않을까 한다.

두 번째는 온라인 소통과 고품질 음악 다큐멘터리의 지속적 생산이다. 유튜브와 SNS를 통해 실시간 공연 생중계는 물론이고 전 세계 음악팬들과 뮤지션들이 채팅을 하며 상호 소통한다면 많은 호응을 얻을 것이다. 비대면 방식이 대세로 자리 잡은 현재 상황에서는 지금보다 훨씬 강화된 온라인 소통이 필요하다. 아울러 모든 공연을 동시에 녹화하고 사후 편집하여 고품격의 음악 다큐멘터리로 재생산한다면 여러 채널을 통해 홍보가 되고 부가수익 창출도 가능하리라 본다. 다큐멘터리의 작업에는 글쓴이의 직장과 같은 지역 방송사와의 대대적인 협업을 제안한다.

마지막으로는 체계적이고 영구적인 아카이빙 작업이다. 행사 기간에만 에이팜이 열리는 것이 아니다. 사실 공식적인 일정이 끝나는 그 순간부터가 진정한 에이팜의 시작이라 할 수 있다. 모든 포럼, 쇼케이스, 공연을 영상과 문서, 회의록 등으로 정리하여 홈페이지에서 연도별로 볼 수 있도록 하고 안정된 서버에 영구 보관하는 것이 필요하다. 아카이빙이야말로 진정한 에이팜의 자산이고 미래의 문화유산이기 때문이다. 과감한 투자와 체계적인 관리를 통해 우수한 아카이빙 체계를 확보한다면 에이팜의 지속적인 성장에 중심역할을 할 것이다.

어려운 시기이지만, 이럴 때일수록 기본에 충실한 콘텐츠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고 믿는다. 지금까지 오직 음악만을 생각하고,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만을 보며 달려온 에이팜이 새롭고 다양한 시도로 이 난관을 헤쳐나가 더욱 우뚝 서게 되기를 기대한다.

  • 필자소개

    UBC 울산방송 PD로 재직 중이며 <열린예술무대 뒤란 >, <지금 무대에선>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있다. 30여 년의 세월 동안 지치지 않고 음반수집에 열중하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2017년 저서 <프로그레시브록 명반 가이드북>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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