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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주민공감정책 , 600년 역사 4공과 만나는 병영성

봄에 떠나는 병영나들이
병영성, 사람과 통하다

다감이 장원정

어릴 때 친구들과 늘 있던 도토리 키 재는 풍경 하나.

“너, 국보 1호가 뭔 줄 알아? 그럼 보물 1호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그래, 좋아. 사적 1호는?”

보물에서 대부분 승패가 나지만 그래도 사적(史蹟)까지는 늘 준비해야 한다. 그런데 말이다.
가끔은 진짜가 나타나기 마련이다. 중학교 2학년 때 일이다. 4교시 국사 시간이 끝나고 점심시간이었을 거다.
뭐가 발단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밥 먹다가 내가 국보 2호를 거들먹거리며 숟가락을 들 찰나,

“너 울산에 있는 국보 대 봐?”

운동장 주위로 산 벚꽃이 만개하여 꽃동산을 이루고 있던 봄 날 그 질문을 받는 순간 창문 밖에는 벚꽃이 초속 5cm의 속력으로 흩날리고 있었고 내 머리 속은 그 같은 속력으로 새하얗게 변해갔고 숟가락이 살짝 박혀있던 양은 도시락 통은 굳어만 갔다. 그 날 나에게 오후 수업이 있기나 했는지 모르겠다. 인터넷은 고사하고 컴퓨터도 잘 몰랐던 그 시절 학교를 파하고 집에 와서는 오후 내내 아버지 서재 한 곳에 가지런히 꽂혀 있던 동아세계대백과사전을 필두로 몇몇 사전과 씨름을 해야만 했다.

병영성 - 지금은 많이 잊혀진, 그러나 잊기엔 너무 소중한

울산의 대표 문화유산에서 국보나 보물로만 목록을 좁혀 보자면 그리 많은 편은 아니다(국보 2점, 보물 8점). 보다 아쉬운 건 울산 박물관에 있는 두 점 - ‘자치통감’ (보물 제 1281-4호), ‘태화사지 십이지상 사리탑’(보물 제 441호) - 을 제외하곤 도심을 벗어나야지만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사적 현황(사적 7곳)을 더하더라 도 크게 변함이 없다. 서울 숭례문이나 흥인지문이 600년 수도로서의 역할을 해 오기에 그렇다 치더라도 수원 화성이며 전주 한옥마을 일대와 풍남문이며 나주 금성관 이나 강릉 객사 등등 출퇴근길나 등굣길에 차창 밖으로 무심한 듯 일상적으로 함께 호흡하는 환경과 성남동- 읍성 남문 밖 마을이라 하여 이름이 성남(城南)동이다 - 이라는 이름에서만 겨우 울산 읍성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는 환경을 생각해 보자면 이건 꽤나 아쉬운 대목이다. 하지만 말이다. 반구동을 지나 동천강 옆 병영동까지 살짝 눈길이 닿을 수만 있다면 울산 도심에서 만나는 문화유산과 얘기 거리의 모습은 사뭇 달라진다.

“울산 경상좌도병영성(蔚山 慶尙左道兵營城, 이하 ‘병영성’이라 표기)은 울산광역시 중구 서동 일원에 있는 조선시대의 성으로, 1417년부터 1894년까지 경상좌도 병마절도사가 지휘하던 성으로서 기능을 하였다. 1987년 7월 18일 대한민국의 사적 제320호 울산병영성로 지정되었으나, 2011년 7월 28일 울산 경상좌도병영성으로 문화재 명칭이 변경되었다.”-위키백과에서

고려 말부터 조선 초까지 잦은 왜구의 침입으로 피해가 극심하게 되자 조선 초 조정은 당시 경상우도진(慶尙右道鎭) 마산 합포에 통합돼 있던 병영의 기능을 분리하 여 울산지역에 경상 좌도진(慶尙左道鎭)을 두기로 결정한다. 태종 17년(1417) 경주부 토을마리(지금의 모화毛火) 기박산성에 있던 병마도절세사영(나중에 병마도 절도사영으로 바뀜)이 이곳 울산 거마곡(큰마을)으로 옮겨오면서 현재까지도 울산이라는 도시에 ‘병영’이라는 짙은 흔적을 여러 문헌과 오늘의 지도에도 남게 된다. 조선 시대에는 전국 8도에 병영과 수영을 각각 1곳씩 설치했는데 경상도와 함경도에는 각각 둘 씩 있었다. 조선의 군사제도가 여러 번 바뀌지만 울산에 있는 경상좌병 영(경상우병영은 진주에)은 1894년까지 500년 조신 시대를 지나는 동안 낙동강 동편 즉 경상좌도를 지키는 최고위 군사지휘관이 있던 곳이다. 조선시대 성곽 연구에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받고 있는 병영성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으로 인해 심각한 손상을 입었고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는 각종 관아 시설이 모두 해체, 파괴되기에 이른다. 해방 이후엔 민가들이 들어서면서 성터는 경작지로 개간되더니 지속적으로 대단위 아파트와 상가 시설까지 자리 잡으며 병영성이라는 이름은 희미한 첫사랑 의 기억보다 못한 시민들에게는 완전히 잊혀진 과거가 되어 버렸다.

하지만 100년간 역사에서 사라져 버린 병영성이 20세기 말부터 서서히 부활을 꿈꾸기 시작한다. 1996년 병영성 복원 계획이 시작되더니 2014년부터 문화재청, 울산시 그리고 중구청이 공동으로 중장기 정비계획을 세우고 주요 구간에 대한 보수, 정비와 주민의 생활 안전 개선 사업을 진행함과 동시에 특색 있는 문화콘텐츠 활성화사업 펼치면서 병영성이 주민들의 삶에 직접적으로 스며들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도 도시개발을 저해하는 장애요인이 아니라 병영성이 되레 보다 나은 주거 환경을 위해 꼭 필요한 존재로 말이다. 이런 풍문이 여기저기로 필자의 귀에도 전해 오자 온 몸으로 확인하고픈 생각이 간절해졌다. 무엇이 이들을 변하게 했는지를 말이다. 마침 시민들을 대상으로 ‘병영성, 사람과 통하다’라는 병영성 소풍이 3월말에 열린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그리고 보니 올 해가 병영성 축조 600주년 되는 해이다. 드디어 그 풍문의 실체를 확인하고자 옛 병영성 남문자리를 지나 병영성으로 들어간다.

울산은 성곽의 도시입니다

밤새 내린 비로 잔뜩 찌푸린 날씨가 아침에도 이어지고 있어 조금은 걱정스런 마음으로 집결지인 ‘외솔기념관’에 도착을 했는데 벌써부터 까르르 웃음소리가 사방에 서 끊이질 않는다. 가족 단위로 삼삼오오 이미 접수를 끝내고 나서 자칫 지루했는지 기념관 광장에서 학부모는 학부모대로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모두 수다 삼매경이다. 예정 시간이 되자 실내에서 오늘 일정과 답사 현장에 대한 간략한 소개가 이창업 교수(울산과학대학교, 울산시 문화재 위원)의 음성으로 진행이 된다.

“울산은 성곽의 도시입니다. 그냥 개수만 많은 게 아니라 종류가 매우 다양합니다. 울산읍성과 언양읍성을 비롯해 신흥산성이나 문수산성처럼 봉우리와 골짜기를 감싼 산성들, 신라시대 쌓았던 관문성, 왜적으로부터 경상도와 동해를 방어하기 위해 세운 병영성과 수영성(개운포성), 조선 최초의 석보(石堡)인 유포석보, 바다의 적을 막아내기 위해 울산의 해안에 쌓은 수군들의 진성(鎭城), 말과 여러 가축을 기르기 위해 쌓은 마성(馬城),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시기에 일본군들이 쌓은 왜성(倭城) 등 모든 종류의 성곽이 남아있습니다.”

병영성 답사현장 사진

평소 울산에 대해 조금은 알고 있다고 자부하던 필자로선 조금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언급한 30여개의 성 중에서 반 이상이 처음 들어본 이름이지 않는가. 짧지만 거침없던 그의 설명에 답사도 하기 전 학부모 모두는 한아름 병영성에 대한 이야기들이 벌써 머릿속에 단단히 박힌 표정들이다. 잠시 후 박성민 중구청장의 시간이다.

“제가 여기서 자랐습니다.”

그냥 인사치레거니 생각했던 시간에 툭 던진 그의 말이 왠지 의례적인 말이 아니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말도 허투루 듣지 않고 경청하게 된다.

“아, 그리고 교수님 오늘 이각- 임진왜란 당시 경상좌병사를 맡고 있던 이각은 왜군이 쳐들어오기 전 병영성을 버리고 달아났다(필자 주) - 얘기도 합니까?”

오가는 대화가 예사롭지 않다. 그리고 보니 병영성 정비사업이 속도를 낸 게 박성민 중구청장 취임과 궤를 같이 하고 있다.
활기찬 얼굴로 미리 단체사진을 담고서 본격적인 답사의 시작이다. 옛 동문 쪽으로 올라 북문을 거쳐 다시 서문 쪽에서 내려오는 일정이다. 외솔 기념관을 벗어나 본격적인 성곽으로 올라서자 저 멀리 울산대교와 태화강 하구가 바로 눈앞이다.

“저기 울산대교 전망대가 보이시죠. 저 쪽에 봉수대가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울산만의 관문을 지키는 핵심 봉수대였죠.”

실내에서 못다 한 이창업 교수의 현장 설명이 답사 중간 중간 이어진다.

“병영이 모화 인근 기박산성에서 옮겨 왔다 말씀 드렸죠. 기박산에서 신라 때의 성을 발견한 뒤, 그 곳에 깃발을 꽂아두고 성을 쌓고 있었답니다. 그런데 갑자기 거센 바람에 깃발이 하늘로 날려가 군사를 보내 찾게 했데요. 나중에 군사가 와서 하는 말이 깃발이 자리 잡은 곳이 산으로 둘러싸여 소쿠리같이 생긴 지형으로 정말 좋답니 다. 이 말을 들은 장군은 기박산에서 성 쌓는 일을 중단하고 깃발이 내려앉은 곳으로 병영을 옮겨 왔는데, 그것이 지금의 울산 병영성이었다고 하니 결과적으로 병영성 은 깃발을 따라서 온 셈 인거죠.”

전설의 고향이 따로 없다. 전설과 사실이 만난 구수한 입담에 자칫 지루할 법한 답사가 지루할 틈이 없으니 그의 뒤를 따라 성곽을 걷는 아이들과 학부모 모두 한결 가벼운 모습이다.

답사 하는 동안 옆에서 함께 걷던 시민기자가 말을 건네며 살짝 웃는다. 보수 이전의 모습을 알지 못하는 나로서는 정비 사업으로 얼마큼의 변화가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딱 그 만큼의 변화는 누군가에겐 생생 히 와 닿고 있는 것이다.

“우리 풍선 다 날려보는 건 어떨까요?”

병영성 답사현장 풍선 날리는 사진

답사 내내 손에 들린 색색의 풍선이 날아갈까 마음 졸였겠건만 모두가 성곽을 내려갈 무렵 누군가의 제안에 모두가 흔쾌히 동참해 본다. 오락가락 내리는 빗속에 간간히 불어와 차가울 법했던 바람이 오히려 답사의 끝자락에서는 오늘 행사를 형형색색으로 물든 추억이 되게 한다. 이제 서문지에서 방향을 틀어 병영초등학교로 내려간다. 병영초등학교에서 지금은 남아있지 않은 관아 시설에 대한 짧은 이야기로 두 시간여의 답사를 마무리 하고 다시 외솔기념관으로 돌아와 끝으로 오늘 답사에 대한 느낌을 짤막하게나마 다들 엽서에 남겨보는 시간이다.

“문화재가 무슨 관광자원이 되겠냐는 주민들도 이번 주민공감정책사업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병영성을 찾아오는 것을 보고 문화재에 대한 인식을 바꿀 수가 있는 계기 가 되었습니다.”

작년 한 해 동안 병영지역에서 주민공감정책사업을 시행하고 마감하면서 한 중구청 노선숙 문화관관실장의 얘기다. 좀 더 들어 보자.

“문화재 주변 주민들의 생활공간과 자연스럽게 조화될 수 있도록 보수 정비되고 있지만 도심 내 위치한 병영성은 주민들에게 도시개발을 저해하는 장애요인으로 인식 되고 있었습니다. 이번 사업을 통해 주민들에게 지역의 문화자산인 병영성의 중요성과 문화재 보존의 필요성을 알려주고, 병영성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울산의 대표 문화재인 병영성을 알려주고자 노력하였습니다.”

봄에 떠나는 병영 나들이가 올 해 첫 프로그램이다. 또 다른 세 번의 프로그램이 이미 준비를 마치고 분기별로 선보인다고 한다. 이런 분위기라면 올 한해도 당분간 병영성이 유쾌함으로 제법 들썩거릴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그런 좋은 예감을 받고 나 또한 유쾌한 발걸음으로 외솔기념관을 나선다.

미니인터뷰 이하림 (문화예술공작소 공작새 대표)

오늘 행사가 ‘2017 주민공감정책, 600년 역사 4공과 만나는 병영성’의 일환으로 열렸습니다. 4공이 어떤 의미인지요, 그리고 이 행사의 출발점은 무엇입니까?

4공은 공존(과거와 공존), 공유(대지와 시설), 공감(가치와 생각),공생을 말하는 것입니다. 문화재청 지원 사업 중 “주민공감정책” 사업으로 문화재 주변에 거주 하는 주민들을 문화재와 함께 긍정적으로 어우러지는 것이 목적입니다. 사실상 문화재 주변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문화재가 내가 사는 지역에 있는 것을 좋아하 지 않습니다. 문화재 보존 지역으로 묶여 버리면 그 뒤 그 곳은 증축 및 재개발이 전면 금지가 되기 때문이죠. 지자체에서는 독단적으로 복원 사업 및 기타 사업을 강행하는 것보다 이러한 이해와 공감 과정이 필요하다고 판단을 하였고, 그 과정을 수행할 수 있는 단체로 문화예술공작소를 포함한 몇몇 단체들이 사업을 수행하게 되었습니다.

작년과 올 해까지 이 행사를 준비하면서, 또 현장에서 진행하면서 가장 큰 어려움 혹은 어려울 때가 있었는지요?

처음 시작할 때 생각 이상으로 닫힌 주민들 마음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마음들은 지자체도, 저희 같은 수행단체들도 한 번에 열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문을 두드리다 보면 언젠가는 열리겠지 하는 마음으로 접근했고 일 년 동안 조금씩 변화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답사를 하고 나서 느낀 건 초등학생들도 좋아했지만 학부모 반응이 더 뜨거웠습니다. 이러한 프로그램을 성인들 대상으로 계획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성인들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은 다른 단체에서 진행중입니다. 저는 아이들과 함께 하는 이 모습이 좋더라구요. 아이들이 미래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무런 이권, 이익이 없는 아이들이 순수하게 병영성에 대한 친근함을 느끼길 바랐고 좋은 추억들이 병영성에서 만들어 진다면 이들이 부모가 되어 다시 자녀들과 함께 병영성을 거닐 수 있지 않을까요? 그 때 즈음엔 확실히 병영성은 울산을 대표하는 시민들과 호흡하는 문화재가 되어 있겠지요.

올 한해 있을 프로그램을 간략히 소개해 주신다면?

올해는 4가지 테마로 준비했습니다. 3월에 열린 병영성 소풍 다음으로는 병영지역 상인 및 주변 상권과 함께 즐길 수 있는 캐쉬몹 형태의 런닝맨 프로그램, 이른바 ‘병영습격사건이 뛰어도 덥지 않을 5월에, 전국 대학생과 병영지역 아동들이 함께 하는 ’놀이학교‘는 여름방학에 열린 계획입니다. 그리고 가을엔 병영성 전시(지자 체에서 준비 중인 병영성 축제와 연계해서 진행할 예정)을 준비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