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기획

도시 안의 낯선 시선, 익숙하거나 혹은 새롭거나

<전시> 아트프로젝트울산2017, ‘안, 도시, 뜰’

다감이 이혜영

오원영, 미미크리-공존, F.R.P 가변설치

오원영, 미미크리-공존, F.R.P 가변설치

한낮의 거리는 고요하였다. 가까운 카페에서 흐르는 낮은 음악도 귀에 거슬리지 않았다. 간간히 울리는 자동차 경적도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나들이 가족의 웃음도 편안한 휴일의 거리 풍경이었다. 이전부터 자리 잡은 하나의 이야기였다.

때때로 도시 안에서 도시를 면밀히 들여다보면 거리가 가진 이야기, 건물과 사람이 가진 이야기 등 갖가지의 이야기가 하나씩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도시 전체의 이야기가 보이기 시작한다. 그것은 익숙함이기도 하지만 새로움이기도 하다.

익숙함은 사람의 공간에 깊이 파고 들어와 일상을 무던하고 지루하게 한다. 하지만 공간을 면밀하게 관찰함으로 우리는 새로운 것을 발견하게 된다. 무던함과 지루함 사이의 미처 발견하지 못한 낯설음이다. 그것은 사람을 어색하고 불편하게 만든다. 새로움은 공간을 향해 낯설게 웃고 있다. 그러나 곧 익숙함으로 흡수된다.

동서대학교_큐어들

동서대학교_큐어들

중구 문화의 거리에서는 4월 22일부터 9일간 다양한 현대미술을 선보이는 도심 속 전시회가 열렸다. 올해 5회째 마련되고 있는‘아트프로젝트울산2017’은 울산 원도심 문화의 거리를 중심으로 주변 갤러리와 야외 거리에서 조각과 그림, 사진 등을 전시하였다.

이번 전시는 ‘안, 도시, 뜰’이라는 주제로 회화, 조각, 설치, 미디어, 미술, 사진 등 도시에 있는 작은 일상을 다양한 모습으로 재연하여, 도시라는 공간 속에서 예술은 사회문화적 조건과 상호작용함으로써 예술 혹은 그 사회가 가지고 있는 다양한 이미지를 보여주었다. 이때의 도시는 단순히 물리적, 기능적 공간이 아닌 ‘이미지 집합체로서 물질’ 내지는 ‘표상된 상징’과 같은 철학자 베르그송(H Bergson)의 주장을 의미한다. 예술가들은 도시라는 유기적 공간에 분포되어있는 시공간적 이미지를 재생산하며 그 개념과 형식을 확장하고 있다.

거리에서 해학을 읽다

이정윤, On the edge_inflated statue, PVC, motor

이정윤, On the edge_inflated statue, PVC, motor

한때 ‘코끼리 냉장고에 넣는 방법’이라는 유머가 유행처럼 번졌다. 직업별, 전공별, 성격별, 별별(別別) 시선으로 다르게 해석하는 이 유머는, ‘냉장고 문을 연다. 코끼리를 넣는다. 냉장고 문을 닫는다.’라는 식의 당연하면서도 허무한 정답에 우리는 가벼운 유머도 소화시키지 못할 만큼 일상을 진지하고 무겁게 바라보고 있었다. 일상의 중압감에 때로 유머가 필요하고 때로는 진지함이 필요하지만, 우리는 쓸데없이 가벼운 유머에도 웃지 못하고 진지해져야하는 현실에 허탈해지고 슬퍼지기까지 했었다.

거리에 선 코끼리도 그러하다. 이정윤 작가의 ‘On the edge_inflated statue’에서 엄마 코끼리의 앞모습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곳을 향해 있고, 엄마 코끼리의 꼬리를 부여잡은 어린 코끼리의 얼굴에는 장난스러움과 눈물겨움이 느껴진다. 엄마 코끼리와 어린 코끼리는 누가 누구를 부여잡고 당기는 것인지 끌려가는 것인지 알 길은 없으나, 그 덩치로 감당하기 힘든 상황임은 분명하다. 문득 핑크 힐이 눈에 띈다. 난데없이 어울리지 않는 저 핑크 힐은 뭐람….

현실에서 우리는 핑크 힐을 벗어 버리지 못하고, 어린 코끼리를 떼어 버리지 못하는 코끼리처럼 늘 방황한다. 미지(未知)와 기지(旣知)의 사이에서 어떤 것을 소유를 두고 선택해야 할 때도, 아무리 생각해도 답을 찾을 수 없고 누구도 해답을 말해주지 않을 때도 우리는 곧잘 세상의 허무를 느낀다. 그리고 어이없는 관념과 관습이라는 유머를 떠올리고 약간의 실소(失笑)를 흘리고, 또 약간의 노혐(怒嫌)을 타게 된다. 세상은 눈물겹다. 그래서 저마다의 해법이 필요하다.

어느 미지의 공간과 시간을 향해 있을 엄마 코끼리의 표정을 상상하며 필자는 바람을 가져본다. 비록 현실은 제 몸에 맞지 않는 여러 가지 무게를 지탱하고 있지만, 머리만큼은 아프리카 초원에서 바람을 맞으며 웃음을 가졌으리라- 하는.

공간을 담아내다

  • 이상한,미풍경의 기억이상한,미풍경의 기억
  • 김서량, Sound of the City, 쇼파, 헤드폰, mp3 player, sound김서량, Sound of the City, 쇼파, 헤드폰, mp3 player, sound

야외에서 또 하나 눈에 띄는 작품은 이상한 작가의 ‘미풍경의 기억’이다. 안과 밖이 투명한 공간은 안에서 밖을, 밖에서 안을 바라보는 시선을 담는다. 직육면체로 이루진 공간은 다수의 프레임을 가지고 있다. 다수의 프레임은 보는 곳에 따라 다른 프레임의 시선을 만들어 낸다. 인간 또한 자신의 의지에 따라 원하는 프레임에 자신의 의지를 담아 낼 수 있다.

아나몰픽에서 김서량 작가는 ‘Sounds of the City’로 도시의 소음(騷音)을 들려준다. 파리, 베를린, 동경, 그리고 서울. 이 도시의 소음은 도시의 형체와 도시인의 모습을 상상하게 한다.

리듬감과 높낮이가 있는 음들이 장내(場內)를 울렸다. 그러자 사람들은 더욱 바쁘게 움직인다. 해가 뜨기 전에 거리로 쏟아져 나와 어둠과 함께 플랫폼사이로 사라진다. 어쩌면 어둠과 함께 거리로 쏟아져 해가 뜨면서 증발 하였는지도 모를 일이다. 서울의 풍경이다.

파리의 풍경은 에펠 탑이 올려 보이는 광장서 자리를 깔고 앉아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었다. 동경의 거리는 저녁 손님을 기다리는 주점 앞을 지나며 경쾌한 음악 때문에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요기(療飢)를 느끼고, 베를린의 한적한 거리는 음악도 작은 소음도 없었지만 밝은 도시를 상상하게 하였다.

이 도시들의 거리 이름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도심에서 수없이 울렸을 차임벨과 광장 인파속서 나누는 대화들, 어둠이 앉은 거리에 쏟아지던 유행가는 공간과 풍경과 사람을 상상하게 하였다. 이것은 우리가 중구 문화의 거리를 걷는 것과 비슷할 것이다.

배상욱,Hero,나무,복합재료

배상욱,Hero,나무,복합재료

가기 갤러리에 들어섰다. 배상욱 작가의 ‘Hero’를 보는 순간, 김밥 생각이 났다. 김밥의 속을 살펴보면 맛을 가늠할 수 있다. 참치, 계란, 어묵, 누드 등등의 인간의 입맛과 취향에 따라 다양하게 고려하여 그 맛, 또한 이미 안다. 하지만 인간의 속을 살펴서 인간의 성격과 유형을 알기란 상당히 어렵다. 가늠할 수 없다. 인간의 속은 알다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에게는 혜안(慧眼)이 필요하고 인간을 위해 처세술에 관한 이야기들도 무성하다.

성냥은 옆구리가 터진 채 죽었다. 누웠다. 아니 꺼져있다. 성냥을 의인화한 작품은 성냥 속에 자본이라는 인간의 욕망을 가득 담았다. 돈으로 힘껏 채워져 불룩 솟고 옆구리 터진 성냥은 홀쭉이 성냥과 상반된 이미지를 느끼게 한다. 자본은 인간의 공간에 가까이 혹은 아주 멀리 떨어져 욕망이라는 이름으로 인간을 힘들게 한다.

  • 김진, 정물_죽은 자연-Nature Morte-Dead Nature #13, Oil on canvas

    김진, 정물_죽은 자연-Nature Morte-Dead Nature #13, Oil on canvas

  • 아트그라운드hQ

    아트그라운드 hQ

  • 배경희,삼베상보

    배경희,삼베상보

대안공간 42에서는‘정물_죽은 자연-Nature Morte-Dead Nature #13’을 통해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김진 작가는 광택제를 뿌려 과일과 채소, 심지어 고기에도 반짝이는 것을 입혔다. 모든 반짝이는 것은 예쁘다. 새롭다. 그래서 사람들은 반짝이는 것을 좋아한다. 이 잘 닦인 정물들을 통해 무엇이든 상품으로 재탄생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반짝임의 탄생은 매혹적이고 관능적이다. 하지만 작가는 죽음에도 반짝일 수가 있는가. 하는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대답할 수 있을까?

아트그라운드 hQ에서 권순만, 배경희, 하원 작가의 3인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자투리들이 모아 하나의 완성품을 내놓은 배경희 작가의 ‘삼베상보’는 자세히 보아야 한다. 먼 곳에서 시선을 두고 보면 천 위에 그림을 그린 듯하나 자세히 보면 캔버스에 여러 천의 느낌을 살려 조각보를 완성하였다. 작가는 자투리도 엮어 완성품이 되듯 여러 꿈도 하나로 잘 어우러지기를 바라는 소망을 담았다.

권순관 작가의 ‘Unfinished dialectical theater_As they build structures’와 ‘Unfinished dialectical theater_Woman-makeover’는 조감도를 연상시키는 도시 풍경과 얼굴 성형을 끝낸 후 붕대를 감고 신체 성형을 위해 수술 영역 표시를 해 둔 사진이다. 이 2~3미터의 대형 작품은 실제로 벌어지는 상황을 과거와 현재의 시간으로 재해석함으로 우연적이지 않고 연출된 듯한 느낌을 준다.

하원, 폭포, Lenticular

하원, 폭포, Lenticular

하원 작가의 ‘폭포’는 보는 각도에 따라서 다른 사진을 나타나게 하는 렌티큘러 방식이다. 흔히 아는 홀로그램과 조금 다른 방식인데, 정지된 화면에 관객이 움직일 때마다 떨어지는 폭포의 이미지가 살아 움직인다. 폭포의 정지된 시간과 공간, 재료와 방식이 갤러리 안으로 들어와 움직이며 재생되는 것이다.

이 외에도 국내외에서 활동 중인 작가와 대학생 팀이 참여한 작품들이 있다. 하지만 짧은 준비 기간과 홍보 탓인지 울산의 전시 문화가 조금은 생소해서인지 관람객은 그리 많지 않았다. 도시 안는 열린 공간이다. 누구나 찾아와 머무르고 또 떠나간다. 중구 문화의 거리도 물론이다. 다양한 사람들이 방문하고 머무를 수 있는 곳이다. 문화예술 활성화로 부단히 노력하는 이곳에, 문화예술과 관련하지 않더라도 더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즐기고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 그래서 조금은 저마다의 생활에 웃음이 될 수 있기를.

  • 권순관, Unfinished dialectical theater_As they build structures, Unfinished dialectical theater_Woman-makeover, Digital C-pri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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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니콜라 루빈스테인 Miaar, painting on wood t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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