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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문화재단 비전 선포식

다감이 박아현

예술로 새롭고 문화로 더 행복한 더 큰 울산을 위한 100일
비전 선포식 현장스케치

2017년 4월 10일. 울산광역시청 시민홀에서 울산문화재단의 비전 선포식이 열렸다. 비전 선포식은 출범 100일을 기념할 뿐만 아니라 울산문화재단의 미션과 앞으로의 전략목표, 그리고 핵심가치에 대한 발표를 통해 공식적인 시작을 알렸다.

울산문화재산의 비전은 품격 있고 따뜻한 문화예술도시 구현에 걸맞은 “예술로 새롭고 문화로 행복한 더 큰 울산"이다. 이 비전을 위하여 재단은 소통과 공감, 창의성, 전문성, 공공성이라는 네 개의 핵심가치를 기반으로, 예술가가 예술하기 좋은 창조적 문화생태계, 시민의 꿈과 상상이 꽃피는 일상 속 문화복지, 울산형 문화예술콘텐츠 발굴 및 도시 리브랜딩, 대한민국 1등 문화재단을 향한 창의경영모델이라는 네 개의 전략 목표를 발표하였다.

예술가가 예술하기 좋은 창조적 문화생태계를 위해 재단은 창작과 향유의 선순환 지원체계를 조성하고, 예술활동 여건 개선 및 인프라 확충, 차세대 지역예술인력을 발굴·육성하겠다고 밝혔다.

대부분의 시민들은 울산에서 문화예술을 접하는 것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예술 자체가 어렵고 멀게 느껴진다는 의견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재단이 출범함으로써 울산에서도 문화예술을 쉽게 즐길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질 것으로 기대를 가지게 되었다. 이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재단에서는 시민의 꿈과 상상이 꽃피는 일상 속 문화복지로 지역·세대·계층 별 맞춤형 문화 나눔, 풀뿌리 생활문화공동체 활성화, 함께하는 문화예술교육을 확산하는데 노력을 기울일 것을 약속했다.

뿐만 아니라 울산형 문화예술콘텐츠 발굴 및 도시 리브랜딩을 약속했다. 울산만의 특별한 콘텐츠와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문화예술 중심의 신명나는 도시재생을, 활력이 넘치는 청년문화를 만들 것을 거듭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대한민국 1등 문화재단을 향한 창의경영모델 창출을 약속했다. 열린 행정체계 및 협력네트워크를 마련하고, 문화예술재원 조성 다각화, 앞서가는 경영혁신 및 고객감동실현을 위해 힘쓸 것이라는 포부를 밝혔다.

울산문화재단의 CI(Corporate Identity)에 대한 설명도 이어졌다. CI는 재단의 정체성을 대표하는 상징이다. CI를 디자인하기 위해 재단의 임직원들은 1월 1일 출범 후 꼭 100일의 시간 동안 재단의 정체성을 효과적으로 나타낼 디자인을 고안하기 위해 세 가지 요소를 기준으로 고민했다고 한다.

울산문화재단ci

첫째, 울산문화의 상징적 요소를 담을 것. 비뚤어진 사각형, 거친 테두리, 음각으로 표현된 디자인은 울산에서 가장 오래된 상징물인 반구대 암각화에서 영감을 얻었다. 뿐만 아니라 울산 지역 내 선사인들에 의한 최초의 문화예술작품으로의 상징성 또한 갖추고 있기에 재단의 상징으로 선정하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고 한다.

둘째, 쉽고 친근한 이미지일 것. CI는 워드마크(word mark) 타입으로 직접적으로 구현하였다. 워드마크란 심볼과 로고의 구분 없이 심볼마크 자체에 회사명이나 약자를 넣은 것을 말한다. 한글은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이미지임과 동시에 한글을 읽음으로서 재단의 로고임을 매우 직접적으로 알 수 있게 했다. 울산문화재단이 강조하는 쉽고 친근한 문화예술을 가장 잘 표현하고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셋째, 울산문화재단의 인간 중심 철학을 담을 것. ‘우리는 모두가 예술가로 태어났다.’ 피카소의 말을 인용한 재단의 철학은 매우 가슴에 와 닿았다. 우리 모두가 하나뿐인 자신의 인생을 직접 디자인 하는 예술가이므로, 모든 문화예술은 결국 사람 그 자체이며, 그 문화예술을 꽃피우는 주역 역시 바로 사람이라고 했다. 이렇게 사람이 으뜸이라고 생각하는 재단의 따뜻한 이념을 좀 더 명확하고 정확하게 표현하기 위해, 앞서 모티브 삼았던 반구대 암각화에서 딱 하나 나타난 사람의 얼굴을 삽입하였다.

CI는 붉은 색과 현대적인 서체를 사용했는데, 이 역시 재단의 미래지향적인 기상을 담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CI 하나만으로 재단의 앞으로의 발전방향과 포부가 잘 드러났다.

CI소개가 끝나고 세리모니가 이어졌다. 무대 위에 걸린 ‘예술로 새롭고 문화로 행복한 더 큰 울산’이라는 슬로건은 앞으로의 울산문화재단에 거는 시민들의 기대가 얼마나 큰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았다.

비전 선포식 현장스케치

세리모니가 끝나고 더 스트링스의 기념공연으로 3부를 시작했다. 더 스트링스는 시민들이 클래식을 어려워하지 않고 친숙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결성된 단체다. 실제로 스트링스는 기념공연에서는 우리가 흔히 CF나 영화 등에서 자주 사용하는 모차르트의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 뮤직 1악장, 디베르티멘토 제3번 1악장, 바흐의 미뉴에트 제3번, 엘가의 사랑의 인사가 연주되었다. 재단이 강조하는 공감을 잘 표현하는 선곡이었다.
분위기가 무르익자 스트링스는 뒤이어 서양의 현악기에 한국적인 색채를 입혀 ‘경복궁 타령’, ‘울산 아가씨’를 연주했다. 이 두 곡을 연주할 때는 간간히 박수가 들어가며 모두가 흥에 겨워하는 분위기였다. ‘울산 아가씨’로 연주를 마치자 박수소리가 그치질 않았다. 누구나 즐길 수 있도록 문화예술의 벽을 허문 무대였다. 익숙한 느낌에 어깨가 절로 들썩였다.

기념공연을 마지막으로 울산문화재단 비전 선포식은 막을 내렸다. 새싹이 움트고, 꽃 피는 봄이 한 해의 시작을 알리듯, 울산문화재단의 비전 선포식 역시 사람들에게 울산의 문화예술에 대한 기대감을 심어주었다. 임직원들 역시 이런 시민들의 기대에 부응하겠다는 각오가 서린 얼굴을 하고 비전 선포식에 임하고 있었다.

든든하고 굳건하게, 하지만 힙하게

신조어 ‘힙하다’는 단순히 트렌디한 것보다는 좀 더 팔팔하고, 거칠고, 살아있는 날 것에 대한 선호나 지향을 말한다. 울산문화재단의 백일을 맞아, 비전 선포식을 하고 일주일이 지났다. 울산문화재단의 비전 선포식에서 힘차고, 당찬 포부를 내비치던 울산문화재단의 대표이사님을 만나 뵐 기회가 생겼다. 동그란 안경에 짓궂은 미소가 인상적인 분이셨다.

울산문화재단 대표이사

안녕하세요. 간단하게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한국예술진흥원에서 25년을 일했어요. 마로니에 미술관장도 역임했었고요. 한국예술진흥원에서는 경영전략본부장으로, 2010년 6월에 나와서,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산하 조직인 한국지역문화지원협의회에서 사무국장을 지내다 2011년 9월에 나왔습니다. 바로 대전문화재단으로 갔어요. 그리고 여기로 온 거죠.

한국예술진흥원에서 굉장히 오래 계셨는데, 떠나기 많이 힘드셨을 것 같아요.

떠나라면 떠나야죠(웃음). 그래도 마음은 안 좋았어요. 직원들이 거의 다 울고, 저는 그래도 끝까지 안 울다가 차 안에서 펑펑 울었어요. 근데 처음에 위임사를 하는데 목이 매여서 말을 못하겠더라고요. 후배들한테…. 저는 직원들을 후배들이라고 불렀어요. 아무튼 후배들에게 눈물을 보이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었거든요.

직원들을 정말 아끼시는 것 같아요.

저는 지금도 직원들에게 편지를 써요. 저는 권위주의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요. 매일 보내는 건 아니고, 이따금 보내는데 이 메일이 직원들에게 휴식이 되었으면 좋겠다, 하는 마음이에요. 제가 좋아하는 음악이나, 그림들을 보내요. 억지로 오는 직장이 아니라, 웃으면서 일 할 수 있는 직장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울산문화재단은 어떤 곳인지 소개해 주세요.

예술가들의 창작발표활동을 지원하고, 예술가의 창작발표활동을 모든 시민들이 다 함께 즐기면서, 시민의 문화복지가 향상시키는 겁니다. 문화복지가 향상되면서 시민들의 예술적 욕구를 자극하여 시민 스스로 문화예술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임무를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문화예술교육 정책을 시행하는 기관으로서, 문화예술교육정책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노력할 거예요. 문화예술교육정책의 목적이란, 시민들 혹은 국민들의 균형 잡힌 가치와 태도를 갖게 하는 것 입니다. 그 수단이 예술인 거죠. 기술적인 것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문화예술을 콘텐츠화 해서 교육을 하고, 그 교육을 받은 일반 학생들이 건강한 태도와 철학을 가질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울산에 맞는 여러 가지 콘텐츠들을 개발, 육성하여 사업화하여 시민들이 즐길 수 있게 하는 것, 외지의 관광객들이 찾아오도록 하는 것 역시 재단이 할 일이지요.
예를 들면 저희 재단의 CI도 일종의 콘텐츠라고 볼 수 있어요. 반구대 암각화를 모티브로 한 것이잖아요. 울산, 하면 반구대 암각화. 라고 떠오르는 것처럼 말이에요. 자연에 어떠한 사람의 힘과 지혜가 작동이 되서 우리 사람 중심으로 바꿔내는 것이 문화입니다. 그렇게 바꿔내는 가치, 태도도 문화라고 하는 거죠. 무형문화재처럼요. 때문에 사람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여기 CI에 사람얼굴이 들어간 것이고요.

CI에 얽힌 이야기가 있나요?

네. 저는 사람 얼굴은 그대로 두고, 좌우 반전을 시키고 싶었어요. 근데 다 별로라는 거예요. 그래서 영문으로라도 하고 싶었는데 CI가 두 개는 안 된다는 거예요. 세상을 바꾸어서 보자, 그래서 그렇게 하고 싶었는데 안 됐어요. 그게 아직도 아쉽습니다(웃음).

문화행정가가 되신 계기가 어떻게 되나요.

예술이라는 단어를 모르던 시절부터, 예술가라는 꿈을 꾸며 살아온 사람이에요. 4남매의 장손이 환쟁이가 되서는 안 된다는 아버지의 반대가 심하셨어요. 문예반 반장을 하고, 미술반 애들이 대회 나갈 땐 제가 불려나가서 큰 상 다 탔어요. 거기에 학급반장까지. 부모님께서 제게 거신 기대가 크셨을 거예요. 그래도 어쩔 수 없었어요. 공부 말고 예술을 하고 싶었거든요. 가출해서 절에 갔어요. 그러다 집이 너무 그리워서 두 달 만에 집에 연락을 하니까. 아버지가 초코파이 두 상자를 사서 찾아 오셨더라고요. 제가 초코파이를 엄청 좋아했거든요. 그걸 먹는데 왜 그렇게 눈물이 나던지. 그걸 아버지가 묵묵히 보시더니, ‘그래, 뜻대로 해라.’ 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리고 돌아가시던 그날까지 제가 무엇을 하든 그냥 믿고 두셨어요. 그렇게 문예창작학과를 갔어요. 그러다 대학 4학년 때, 과대표였어요. 졸업 2학기쯤 되서, 전국에 있는 모든 대학에 두 장씩, 한국예술진흥원이라는 곳에서 추천장이 왔어요. 전 이게 뭔지도 모르고 한 장은 누굴 줬는데, 학기말이라 학생들이 없어서 남는 한 장은 제가 했어요. 그래서 이제 취직이 된 줄 알고 됐다 그랬는데(웃음), 아니더라고요. 시험을 본다는 거예요(웃음). 결국 시험을 치고 붙었어요. 그렇게 예술행정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 거죠. 31년째 직장활동을 하느라 작품 활동을 계속 할 수 없는 상황이잖아요. 예술가들 지원하는 일을 하니까, 그래서 뭔가가 늘 허전했어요. 그런데 이제 십여 년 전에, 더 됐나? 이십 한 오륙년 전 쯤 됐을 거예요. 책을 읽는데, 미국 코네티컷 대학 경영학과 교수, 하비 쇼어가 쓴 책에 ‘예술행정은 예술이다’ 이런 말이 있는 거예요. 예술행정은 예술의 가치를 이 사회에 구현해 내는 것인데, 그 예술행정 자체가 예술과 같은 수준으로 상상력과 창의력이 요구되는 거다, 그래서 예술행정을 제대로 펼치려면 예술가의 마음으로 해야 된다는 거죠. 그러고 나서 십여 년 전? 십 한 이삼년 됐나? 프랑스의 콜린느 극장의 예술감독이 아닌 행정감독. 알랭 애르조그가 우리나라에 와서 인터뷰를 하는데, 이런 말을 하는 겁니다. ‘예술가는 불가능한 것을 꿈꾸고, 행정가는 그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한다.’ 이 말 덕분에 저는 예술행정가로 살아가는 것에 후회가 없고, 그것 때문에 너무 행복하게 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나를 버텨주는 힘이 되어주고, 등대가 되어 준 겁니다.

울산문화재단 대표이사

울산지역에서는 문화예술재단이 처음으로 활동하게 되는 해입니다. 이에 관해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있죠(웃음). 제가 2008년도에 여기서 문화재단의 설립 타당성에 대한 주제로, 제가 와서 발제를 했어요. 또 하나 웃긴 건, 재작년 하반긴가에 시장님이 오랜 논란을 종식시키고, 만들자! 하고 결정을 하셨단 말이에요. 그래서 작년 봄에 시청에서 공청회를 했는데, 그 때 발제자로 저를 불렀어요. 그런데 제가 외국을 가는 일정 때문에 못 한다 그랬어요. 시간이 안 맞아서요. 그런데 또 제가 여기로 온 거죠. 공청회나 재단이나 이런 건 상관이 없긴 한데, 묘하죠. 신기하고.
처음 원서를 냈던 날이 울산에 세 번째 온 날이었어요. 그 날은 일부러 차를 몰고 왔어요. 저는 박물관을 굉장히 좋아하거든요. 박물관은 모든 문화예술의 엑기스, 절정 그 자체라고 생각하면 되요. 거기에 모든 것들이 다 있어요. 아무튼 그래서 울산 박물관을 갔는데, 박물관 벽에 반구대 암각화가 있는데, 거기에 막 물이 떨어지는 거예요. 그 원시적인, 7천 년 전의 것을 보는데 심장이 너무 벌렁벌렁 뛰는 거예요! 근데 또 오른쪽으로 탁! 돌았더니 반구대 암각화 실물모형이 또 있어요! 와…. 충격. 진짜 충격적이었어요. 교과서에서나 봤지 실물로 본 적이 없었거든요. 그래서 울산에 대표이사로 취임하고 제일 먼저 달려간 곳이 반구대 암각화였어요. 실물을 보고 싶어서 견딜 수가 없었거든요.
아무튼 그렇게 반구대 암각화, 실물 말고요(웃음). 그걸 보고 곧장 산업관으로 향했어요. 그리고 그곳에서 울산을 확실하게 알게 됐죠. 우리나라의 근대화를 책임지고, 6~80년대의 경제 개발의 신화예요. 그걸 다 보고 집으로 가는데, 여긴 꼭 오고 싶다. 되어야만 한다! 여기서 일을 하고 싶다! 이렇게 생각했죠. 제가 대학원에 진학해 석사과정에서는 ‘예술경영학’과 ‘행정학’을 전공했고, 박사과정에서는 ‘응용언어문화학’ 중에 문화콘텐츠를 전공했잖아요. 콘텐츠화 시킬 것이 무궁무진한 거예요. 정말 원석들이 여기저기 그냥 굴러다니고 있는 거죠. 이 원석들을 잘 가공해서, 보물을 만들어야, 그런 일들을 제가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또, 4월 10일을 기념으로, 비전 선포식을 계획 할 때 말이에요. 보통 이런 일정을 잡을 땐 시장님 일정을 보고 잡는데, 저희는 1월부터 미리 잡아 놓고 시장님께 무조건 맞추시라고. 건방지게(웃음). 백일의 의미를 너무 살리고 싶었어요. 백이라는 숫자는 하나의 영역을 넘는 숫자기도 하고, 미래에 대한 어떤 믿음이 생기기 시작하는 것이 백일이잖아요.
우리 울산이 광역시 승격 20주년이 되는 해잖아요. 그런데 놀랍게도 우리나라 공공문화재단의 역사도 20주년이 되는 해에요. 그 해에 울산에 재단이 들어온 거예요. 신기하죠? 세종시까지, 1개의 특별시, 6개의 광역시, 8개의 도, 1개의 특별자치시, 1개의 특별자치도. 이렇게 총 17개의 행정구역을 광역지방자치단체라고 하거든요. 이 광역지방자치단체에 재단들이 하나씩 들어오는데 울산이 16번째에요. 이렇게 시기를 맞추려고 해도 어려울 거예요.

그렇다면 왜 유독 울산은 이렇게 늦게 재단이 출범하게 되었나요?

늦은 게 아니에요. 잘못하면 새로운 권력기관이 될 수도 있잖아요. 무조건 문턱이 낮은 문화재단이 되어야 하는데, 이게 정말 쉽지 않아요. 어쨌든 이곳도 세금으로 운영이 되기 때문에 여러 방면으로 검토하고 또 검토하고 신중해도 전혀 과하지 않아요. 그런 면에서 오히려 울산은 늦은 게 아니라 아주 신중하게 결정을 내린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거죠.

울산문화재단을 어떻게 운영할 계획이신가요?

학습조직을 통한 지식경영을 하려고 해요. 지식경영이란 조직의 지속적인 경쟁우위를 확보하기 위한 근본적이고 총체적이며 지속적인 경영혁신전략으로 개인학습, 팀학습, 조직학습이 습관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조직적 기제가 무엇인지를 찾아 제도적, 문화적, 시스템적, 환경적 차원의 노력을 전개하는 활동이에요. 현재 이를 위해 직원들의 역량을 기르기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제가 30강정도 강의 계획을 세웠고, 현재 13강까지 완료한 상태에요. 이 30강이 끝나면 직원들과 토론회 등을 하려고 합니다. 그걸 위한 기반들이에요.

앞으로 울산문화재단의 계획이나 포부를 말씀해주세요.

지난 4월 10일, 비전 선포식에서 발표했던 비전들을 완수해 나가는 것이 목적이에요. 전 임직원이 이 비전과 전략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세부 계획에 대한 사업 아이템들을 수확하고 있어요. 대략 200개 정도 들어올 것 같아요. 그렇게 수확한 아이템들을 시민 토론회, 전문가 토론회 등 여러 토론회들을 거쳐서 걸러내고 다듬어나가, 내년부터 시행할 겁니다.
올해는 예산편성이 이미 종료되었고, 막 출범했기 때문에 구체적인 계획들을 밝히기에는 다소 시일이 걸립니다. 올해는 콘텐츠 개발에 힘을 쏟아 붓고, 예산을 짠 뒤, 내년 예산을 책정 받으면 본격적인 재단의 활동이 시작 될 거예요. 재단의 모든 임직원들은 울산 시민 분들 뿐 아니라, 울산에 거주하는 예술계 종사자들에게도 확실한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올 한해는 열심히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으신 말씀 있으신가요?

저는 울산의 문화예술지형이라던가 조건을 모르잖아요. 그래서 발로 뛰어 다니고 있어요. 장생포 창작문화센터, 고래문화특구, 중구예술창작소…. 이런 곳들을 다니면서 울산에 대해 계속 공부하고 있습니다. 현장을 다녀야만 제대로 된 도움이 될 수 있잖아요. 현장을 다니지 않으면 문화행정은 뜬구름만 잡게 되는 거죠. 현장의 사정을 자세히 알 수 없으니까요. 진짜 예술행정가로서는 작은 문화공간들을 끊임없이 발견하고, 발전시키는 것이 현장을 뛰어다니는 예술행정가고요, 제가 추구하는 예술행정이기도 합니다.

인터뷰가 끝이 났다. 한없이 개구쟁이 같은 모습 뒤에 보이는 믿음직한 열정이 가슴에 남았다. 울산문화재단은 그들의 삐뚤빼뚤한 CI처럼 톡톡 튀는 대표이사님을 만났다.
울산문화재단은 올해 출범하면서 여러 우려 섞인 목소리들과 함께 기대감도 엄청나다. 대표이사님의 열정과 뚝심 있는 경영철학이 빛을 발하여, 수천 년이 흘러서도 그 자리에 남아 큰 인상을 주는 반구대 암각화처럼, 울산문화재단 역시 지역의 자랑거리가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